[김기찬 기자의 JOB 카페] ‘4년 비정규직’은 회사의 자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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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기간 제한(2년)이 논란이다. 현행 법은 비정규직을 2년 동안만 고용토록 했다. 그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계약 만료에 따라 회사를 떠나야 한다. 다음 달 1일 70만여 명이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한꺼번에 수십만 명의 실직자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고용 제한 기간을 4년으로 늘리자는 입장이다. 노동계와 야당은 실직이 우려돼도 일단 시행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무조건 회사를 떠나야 할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채용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조건이 아니라 회사의 고유권한이지만 예외가 있다. 경영사정이 악화되거나 채용 목적이 달라지는 등의 고용상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장기간에 걸쳐 비슷한 내용의 계약을 갱신해 온 비정규직 근로자를 회사가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다. 이럴 경우 부당해고로 분류된다. 1994년 1월 대법원은 “기간을 정해 채용된 근로자라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 그 기간(계약 기간)의 갱신이 반복돼 기간 자체가 형식에 불과한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무기계약)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고 판시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라는 것이다. 2004년 서울행정법원도 “계약의 반복성 등을 따져볼 때 근로계약서상의 고용 기간은 단순한 유효 기간의 의미만 가진다. 그렇다면 같은 내용의 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고, 이를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다를 바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이 판단하는 ‘장기간’은 4년 이상을 말한다. 4년 넘게 같은 업무를 계속하면 무기계약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의 결정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안(고용 기간 제한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 회사 입장에선 4년 이상 일한 숙련공이 다른 회사로 가면 큰 손실이다. 새 직원을 뽑으면 교육비용이 만만찮다. 자칫하면 회사의 생산성도 떨어지고, 비용은 더 많이 지출해야 하는 위험이 있다. 법원이 반복 갱신한 비정규직을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숙련공에 대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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