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환란이 민주화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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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지만 민주화는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 최근 아시아 각국에서 거세게 번지고 있는 민주화 도미노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5월21일 수하르토 퇴진으로 민주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비민주적 선거법 개정, 99년 총선.정치범 사면 등으로 민주화가 가속되고 있다.

또 수하르토 족벌기업의 특혜박탈 등 전 (前) 통치자에 대한 단죄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지난 81년이후 17년째 말레이시아를 통치하고 있는 마하티르 총리도 수하르토 하야 이후 국민들의 변화요구와 야당세력의 도전으로 좌불안석이다.

유명무실했던 민주행동당 (DAP) 등 4개 야당은 최근 "마하티르의 장기집권으로 말레이시아가 경찰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며 마하티르 퇴진을 위한 연합세력 결성에 나섰다.

마하티르가 의장인 말레이연합 민족단체 (UMNO) 내에서도 "마하티르 방식은 경제위기 극복에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 는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

마하티르의 유력 후계자로 꼽히는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마저 최근 마하티르의 경제운용 방식에 제동을 걸고 있다.

마하티르 자신도 지난 3일 은퇴 가능성을 표명하며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독재의 대명사처럼 돼있는 미얀마 군사정부도 지난달 이례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재야세력의 '90년 총선승리' 8주년 기념집회를 허용했다.

군이 국방.경제 등 모든 것을 책임지는 인도네시아식으로 헌법을 개정하려다 아시아 경제위기이후 사실상 이를 포기했다.

인도네시아사태 이후인 지난달말 중국반환 이후 홍콩에서 처음 실시된 홍콩입법국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 등 민주세력이 압승을 거둔 것도 홍콩주민들의 민주화욕구 표출로 해석된다.

이에 고무된 민주세력은 직접투표 실시 등 민주화의 전면이행을 즉각 요구, 입법회의의 권한 강화를 통한 홍콩 민주화를 도모하고 있다.

독재자 마르코스 축출 이후 두번째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필리핀도 에스트라다 대통령당선자가 민주적 개혁을 약속하고 있어 민주화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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