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토인비 '역사의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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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모든 민족이나 문화단위들은 현재의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사를 해석하고 미래사도 파악한다.

그런만큼 과거 - 현재 - 미래를 아우르는 역사관은 당시의 역사적.문화적 상황에 의존하게 되고 따라서 그 역사관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역사관이 언제나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역사관을 반성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지적 노력이다. 청소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가 바로 이 역사관을 확정하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는 1차대전 이후 서구를 휩쓴 종말론적, 비관적 분위기의 산물이다.

당시 오스발트 슈팽글러가 '서구의 몰락' 이라는 저서를 통해 대전을 통해 나타난 현대문명의 병리적 징후들을 비관적으로 그려내면서 문명이 유기체로서 탄생 - 생장 - 사망의 필연적 과정을 밟게 된다는 점을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

반면 '역사의 연구' 는 이같은 숙명론으로부터 벗어나 창조적 소수에 의해 진보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전개한다.

이같은 낙관적 역사관을 피력하기 위해 '역사의 연구' 는 역사를 민족이나 국가 중심으로 파악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적 실체, 즉 문명을 역사의 단위로 설정한다.

또 문명이란 개인들 사이의 관계의 결과이며 인간의 정신적 결정체로 본 점은 문명을 단순한 유기체로 이해한 슈팽글러와 중요한 차이점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의 연구' 는 인종이나 환경 등 결정론적 요인도 도전을 제기하는 범위 내에서만 의미를 인정한다.

이같은 도전으로부터 문명의 성장을 가져오는 창조적 소수, 타성에 젖은 한 사회집단 속에서 이 소수가 창조적 의지를 갖고 반응하게 됨으로써 문명이 도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명의 성장.소멸과정을 보면 성장기에는 사회의 다수가 창조적 소수를 기꺼이 모방해 일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도전에 성공한 소수가 자신과 자신이 창조한 제도를 우상화함으로써 창조성과 지도력을 잃게 되면서 문명의 쇠퇴에 들어서게 된다.

창조적 소수가 지배적 소수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소수와 다수의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의 자기 결정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고전에서는 매우 많은 역사철학적 주제들이 쟁점화될 수 있다.

우선 토인비의 문화사관을 마르크스주의 등의 결정론적 역사관과 대비, '어떤 역사이해가 정당한가' 를 물을 수 있다.

다음으로 역사는 결국 대중의 힘에 의해 창조된다는 대중주의적 관점과 대비, 창조적 소수의 역할의 의의와 한계를 묻는 논제도 출제될 수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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