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도시가계 수지]각종지출 10∼45% 허리띠 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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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상 초유의 경기침체가 몰아닥친 올해 1분기 (1~3월) 동안 우리나라 도시근로자가구는 집집마다 각종 씀씀이를 현저하게 줄였다.

이미 가계소득이 큰폭으로 줄어들고 있는데다 앞으로도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으리란 불안감 때문에 소득이 준 것 이상으로 소비를 줄였다.

더 어려울 때를 대비해 소비를 줄이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앞으로 소득감소→소비위축→경기침체→소득감소의 악순환이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 아들딸이 보태주던 생계비 보조도 줄었다 = 너나없이 형편이 어렵다 보니 자녀며 친지에게 손을 내밀기도 (?) 힘들어졌다.

그래서 각종 소득중에서도 특히 이전소득 (21면 용어 한마디 참조) 이 32.0%로 제일 많이 줄었다.

또 축의금이며 부의금을 거두는 일 (경조소득) 도 예전만 못해 월평균 14만1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나 줄었다.

근로소득중에선 돈벌이에 나선 주부들이 늘어나며 배우자소득이 2.8% 증가한 반면 자녀 등 기타 가족의 소득은 23.2%나 감소했다. 취업난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도 집에서 노는 자녀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외식비가 20여년만에 처음 감소했다 =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주말이면 으레 나가서 식사를 해결하던 생활풍속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75년 이후 계속 오름세를 보이던 외식비가 처음으로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 월평균 외식비는 11만3천원으로 지난해보다 24.3%나 줄었다. 또 집집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불요불급한 지출을 가능한 한 삼가다 보니 책.게임기 등 교양오락용품 (44.5%) , 극장료.문화센터강습료.해외여행비 등 교양오락서비스 (22.5%) 관련 소비가 가장 크게 감소했다.

그만큼 생활의 여유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과외비며 약값도 아낀다 = 불황앞에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도 한풀 (?) 꺾였다. 80년대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4분기 2.8% 감소했던 교육비가 올해 1분기엔 더욱 큰폭 (6.0%) 으로 줄었다.

특히 교육비중에서도 학원비며 과외비 등 사교육비의 감소폭이 6.7%로 제일 컸다.게다가 몸이 아파도 약을 사먹거나 병원가는 일을 줄여 보건의료비 지출이 월평균 5만5천원으로 지난해보다 15.4% 줄었다.

◇소득에서 떼는 돈은 더 늘었다 = 각종 세금.공적 연금 등 기본적으로 떼는 돈이 늘다 보니 실제로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은 명목소득보다 더 큰폭으로 줄었다.

올해 1분기 소득세.재산세 등 조세납부액은 가구당 월평균 6만4천5백원으로 지난해보다 9.2%,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공적 연금도 3만6천7백원으로 21.7% 늘었다. 이에 따라 가처분소득은 2백만2천원으로 3.6% 감소했다.

하지만 소득이 준 데 비해 워낙 큰폭으로 소비를 줄이다 보니 가계의 여윳돈 (가처분소득 - 소비지출) 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한달에 5만6천원 가량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보다는 '내일' 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여기는 탓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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