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김대통령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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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 (金泳三) 정부 출범 1백일을 맞던 1993년 5월을 회상해 보자. 당시의 여당이던 민자당이 발간한 홍보책자 '신한국의 창조' 권두언에서 김종필 (金鍾泌) 민자당대표는 김영삼대통령이 시대의 소명을 받아 경건하고 외경스러운 마음으로 신한국 창조에 헌신하고 있고 金대통령의 개혁의지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뇌하는 사랑과 충정이 담겨있다고 극구 찬양했다.

민자당의 홍보자료는 공직자 재산공개와 성역없는 사정 (司正) 을 문민정부 1백일의 업적으로 선전했다. 이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성역없는 사정' 의 막후에서 대통령의 아들과 측근들은 사복 (私腹) 을 채웠고, 김영삼대통령한테 '팽' 당한 김종필대표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의 공동정부의 한쪽 대표가 돼 있다.

김영삼대통령의 첫 1백일과 마지막 1백일의 대조는 더욱 극적이다.

이걸 보면 대통령 취임 후 1백일의 업적평가를 가지고 5년 임기 전체를 예측할 수 없음을 실감한다.

김대중대통령 취임 1백일이 金대통령의 기자회견 정도로 조용히 지나간 것은 다행한 일이다.

도대체 대통령 취임 후 1백일이 어떤 시기인가.

집권세력은 아직도 흥분상태에 있고 야당체질도 남아 있을 것이다.

집권 일념으로 홍수처럼 쏟아낸 공약들의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도 덜 끝난 시기다.

정부출범 1백일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라는 것은 마라톤 선수에게 첫 1㎞에서 스프린트를 하라는 것과 같은 주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국난의 시기에 대통령이 된 것이 金대통령에게는 정치적인 행운이다.

국정의 우선순위에 이미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다.

경제회생이 절대절명의 과제이고, 남북관계의 개선과 국민통합이 그 다음 차례일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정부 1백일의 평가는 업적보다 새 정부가 앞으로 5년동안 수행할 국정운영의 방향은 제대로 잡고 있는가, 적재적소의 인사를 통해 새 정부의 팀은 잘 짰는가, 정부에 확고한 구심력은 있는가를 기준으로 해야할 것이다.

대북정책은 통일을 사실상 유보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기조로 해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4강의 지지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노선이다.

국민통합의 핵심은 지역갈등의 해소인데 새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새 정부의 인사가 지역편중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통계숫자를 들이대면서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도 큰 효과가 없는 것은 지역갈등이라는 것이 원래 논리적.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정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인 경제문제에서 金대통령은 급한 불은 끈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기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에 관해서는 金대통령의 판단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것,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너무 낙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일본 엔화가치의 폭락은 제2의 환란을 위협한다.

특히 정부의 일하는 모양에 실망의 소리가 높다.

공동정부의 양쪽에서 발탁된 경제팀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 같지 않다.

어느 부서, 어느 장관, 어느 경제비서관이 어떤 정책을 발표하면 다른 부서, 다른 장관이 그걸 부인하고 뒤집는 경우가 비일비재 (非一非再) 하다.

정책의 조정기능이 안보인다.

국민과 기업들은 경제정책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그러고는 金대통령에게 많은 일들을 미루는 것 같다.

金대통령이 '경제 대통령' 이라고 해도 대통령 혼자 모든 일에 개입해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중대장이 할 일을 사단장이 하는 부대에 효율적인 전투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대통령을 대신해 정리해고와 기업의 구조조정같은 악역을 맡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은 정부의 정책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을 가동하는 일이다. 경제정책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김대중 대 김대중' 의 노선갈등이다.

안병준 (安秉俊) 교수 (연세대) 의 표현을 빌리면 金대통령은 지구대 (global) 의 시장에서 당파적인 (partisan) 정치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세계시장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같은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요구하는데 국내 정치계와 노동계는 최소한의 정리해고와 사회보장의 확대같은 대중영합 (populist) 적인 정책을 요구한다.

월터 리프먼은 1929년 폴리티션 (politician:정치인) 과 스테이츠먼 (statesman:정치가) 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폴리티션은 자기가 속한 정당과 계급의 작은 이익에 봉사하고 스테이츠먼은 장기적인 시야를 갖고 당파의 이익을 초월해 전체의 큰 이익을 위해 일한다.

리프먼의 정의에 동의한다면 金대통령은 세계화시대의 요구에 맞는 방향으로 '김대중 대 김대중' 의 갈등구조에서 벗어나 폴리티션에서 스테이츠먼으로 결연한 변신과 도약을 해야 한다.

브라질의 페르난두 카르도수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좌파 종속이론가였지만 자유주의자로 극적인 변신을 해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한 인간의 생애의 정상에서도 패러다임 전환과 대변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리프먼은 스테이츠먼이 갖출 자질의 하나로 비상한 용기를 들지 않았던가.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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