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속내 드러내는 중국의 신외교 독트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중국 외교는 20년간 ‘화평굴기’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전략적 독트린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최근 중국의 군사적·외교적 지원 덕분에 스리랑카 정부가 타밀 반군에 승리를 거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스리랑카 정부는 세계의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반군 소탕에 나설 수단도, 의지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 금융·경제의 중심이 됐을 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스리랑카 전장에서 중국의 ‘화평굴기’는 막을 내렸다.

이로써 북한·파키스탄·중앙아시아 같은 분쟁 지역엔 어떤 변화가 올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 중국은 동남쪽 해안을 따라 지속된 경제 붐으로 엄청난 이익을 봤다. 미얀마와 북한이 골칫거리였을 뿐이다. 경제위기와 함께 중국은 주변국의 불안정한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북한과의 6자회담에 관여하고, 파키스탄에 대규모 투자를 한 이유가 모두 주변국 안정을 위해서다. 미얀마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요구한 아시아·유럽 정상회담 선언에 동참한 것도, 26년간 계속된 스리랑카 내전을 끝내는 데 개입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중국의 새 국가안보 전략의 속내는 명확하다. 접경국의 평화와 번영이 없이는 중국의 평화와 번영, 통일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셈법은 지역 내 경쟁 상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해 여름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때 중국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과거 옛 소련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패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지난해 여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은 중국이 이 문제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당시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SCO가 그루지야 내 압하지야·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압박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SCO 중앙아시아 회원국들은 중국의 지지가 없는 상태에서 러시아를 편들려 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대통령 시절 “소련의 해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소련의 붕괴는 더 없이 좋은 일이었다. 수세기 동안 자국 영토를 잠식했던 제국이 한순간 사라졌다. 중국은 러시아가 사실상 소련을 재구축해 포스트 냉전체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1990년대 중국은 주변국들의 우려를 의식해 ‘스마일 외교’를 펼쳤다. ‘화평굴기’의 이념은 그 뒤에 숨겼다. 무역 장벽을 낮췄고, 이웃 국가들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투자도 했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잠재적인 적을 압박하는 동시에 자국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쪽으로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국은 요즘 그 어떤 강대국들보다 주변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적극적인 태도는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외교 노선과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주의 외교를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가 등장함으로써 양국은 대화로 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랴오웬 롱포드 어드바이저스 의장
정리=김한별 기자 ⓒ Project Syndicate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