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물 매도에 증시 횡보…셀 코리아보다 관망에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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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외국인만 바라보는 ‘천수답 증시’-. 외국인이 팔면 내리고, 사면 오르는 증시를 가리키는 증권가의 자조적 표현이다. 최근 수급의 열쇠를 쥔 외국인의 매수세가 부쩍 약해지면서 천수답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최근 움직임은 매도세로 돌아서는 ‘변심’이라기보다는 일단 한발 물러서는 ‘관망’에 가깝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발 뺀 외국인=외국인은 지난주 유가증권시장에서 38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그간 사들인 주식에 비하면 규모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선물을 동시에 팔면서 수급이 꼬였고, 충격도 증폭됐다. 한발 빼려는 외국인의 움직임은 선물시장에서부터 나타났다. 3월 이후 현물과 선물을 동시 매수하며 ‘바이 코리아’에 나서던 외국인은 지난달 중반 이후부터는 현물을 사면서도 선물은 팔았다. 선물을 판다는 것은 그만큼 증시 전망이 불확실해졌다는 방증이다.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인식이 퍼진 데다 원화 강세도 주춤하면서 외국인으로선 환차익을 거둘 가능성이 줄었다. 여기에 북핵 위험까지 가세했다. 삼성증권 전균 연구원은 “외국인들로선 이미 사놓은 주식의 위험을 줄이고 그간 거둔 이익을 확정하기 위해 선물을 팔 필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외국인의 선물 매도로 현물시장의 수급이 꼬였다는 것이다. 선물 가격은 미래 가치가 더해져 현물 가격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대량으로 선물을 내다팔면서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싸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가격이 비싸진 현물을 팔고, 싼 선물을 사는 프로그램 매매(정해진 조건에 따른 기계적인 매매)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지난주에만 이런 프로그램 매물이 1조원 넘게 쏟아졌다. 이른바 꼬리(선물시장)가 몸통(현물시장)을 흔드는 ‘왝 더 도그’(wag the dog)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 선물 매도를 주도한 것은 헤지펀드 자금으로 추정된다. 대우증권 심상범 연구원은 “장기 투자자금은 한번 방향을 정하면 몇 년씩 가지만 헤지펀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빠르게 변한다”며 “이들이 주도권을 쥔 이상 시장의 향방을 예측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변심보다는 관망”=그렇다고 외국인들이 ‘팔자’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속도조절에 가깝다는 얘기다. 동양종금증권 원상필 연구원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은 대부분 펀드에서 나오는데 한국과 관련된 글로벌 펀드로 14주 연속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며 “외국인의 이탈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의 관망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보증권 변준호 연구원은 “이달 말 발표될 국내외 경기지표와 다음 달부터 나올 2분기 기업실적 등을 확인하며 방향을 정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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