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공기업민영화 주도권 다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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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공기업 민영화를 놓고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위원회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기획예산위는 민영화의 구체적 마스터 플랜을 자신들이 짜고, 나중에 재경부에 실무작업을 맡긴다는 입장. 하지만 재경부는 어느 공기업을 어떻게 팔지 등 구체적인 방안은 원래부터 자신들의 몫이란 주장이다.

기획예산위는 공공부문 경영혁신의 큰 틀을 짜는 곳이지 구체적인 민영화 방안을 만드는 부처는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누가 중심인가 = 재경부는 기획예산위와 긴밀히 협조하되 민영화 방안을 직접 만든다는 생각. 이에 대해 진념 (陳稔) 기획예산위원장은 "이규성 (李揆成) 재경부장관과 협의한 것은 사실" 이라며 "기획예산위가 민영화 방안을 확정하면 재경부가 맡아서 추진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 말했다.

반면 정덕구 (鄭德龜) 재경부차관은 "민영화 계획은 재경부가 만들고 기획예산위는 인력감축이나 조직정비 같은 구조조정계획을 짜기로 했다" 고 말하고 있다.

◇왜 재경부가 나서나 = 재경부는 공기업별로 사정이 다르고, 색깔이 틀린데 기획예산위가 너무 이상적으로만 접근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재경부는 그동안 민영화작업과 부처간 이견조정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축적된 역량이 많으며 해당 노조와 농민들의 반발, 1인당 한도 등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획예산위는 4월말까지 관련 자료를 달라고 할 때는 안내놓고 이제 와서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민영화냐' 고 나오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어디까지 민영화하나 = 기획예산위는 팔 수 있는 공기업은 다 판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경부는 현행법상 민영화가 가능한 공기업은 11개 정도로 보고 있다.

이는 한국통신.한국담배인삼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중공업.한국전력.포항제철.국정교과서.남해화학.한국종합기술금융.국민은행.주택은행 등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민영화가 만만치 않다는 게 재경부 생각이다. 예컨대 한전은 정부지분이 51% 밑으로 내려가면 해외채무를 갚아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고,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잎담배 경작농에 이농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등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 기획예산위는 재경부와는 상관없이 당초 일정대로 6월까지 마스터 플랜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재경부도 민영화를 조기에 매듭짓는다는데 이견이 없다. 다만 차관간담회.장관회의.국무회의 등 현행법상 절차를 다 밟으려면 시간이 좀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부처간 손발이 안맞으면 공기업 민영화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미 이런 틈새를 이용, 공기업과 주무부처 등이 노조.정치권 등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고현곤.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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