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감추는 감독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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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16면

SK 김성근 감독은 징크스를 많이 따진다. 연승을 할 때 입던 옷은 계속 입는다. 200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 때 홈 경기임에도 재수 좋은(?) 원정 유니폼을 입고 그 위에 팀 점퍼를 입고 나왔던 건 잘 알려진 일이다. 속옷도 연승 때는 계속 같은 걸 입는다. 양말을 신을 때는 왼발부터 신고, 벗을 때는 오른쪽부터 벗는다. 그냥 그렇게 해야 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14>

지난 17일의 일이다. 6-5 한 점 차로 이긴 SK 선수들을 격려하는 김성근 감독의 겉모습이 뭔가 평소와 달랐다. 그는 제대로 된 유니폼 차림이 아니었다. 그는 훈련용 반팔 바람막이를 맨 위에 입고 있었다. SK는 전날까지 3연패였다. 아마도 연패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만의 처방’이었을 것이다.

한때 퀴즈 프로그램에 단골로 나왔던 야구 관련 ‘상식’이 있다. 감독의 유니폼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이런 거다. “다른 종목 감독들과는 달리 왜 야구감독은 유니폼을 입나요?”라는. 그때 딱 부러진 정답이라기보단 유력한 설 몇 가지가 정답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거다.

첫째는 야구규칙 1조11항. “각 팀은 고유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며 자기 팀 선수와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돼있다. 그 조항에서 유추하면 감독도 선수와 같은 팀이기 때문에 같은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근거는 한국야구위원회 경기규칙 ‘경기의 준비 3조15항’. “경기 중에는 유니폼을 입은 선수와 코치 및 감독, 홈팀 구단에서 공인한 사진사, 심판원, 제복을 입은 경관 및 홈 구단의 경비원, 기타 종업원 이외의 사람은 경기장 안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돼있다. 감독은 선수 교체나 심판에게 이의를 제기할 때 경기장 안에 들어서야 하기 때문에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야구장의 볼보이나 배트보이도 전통적으로 홈팀 유니폼을 입는 걸 보면, 이 조항이 가장 타당성 있어 보인다. 이 밖에 메이저리그에서 감독과 선수를 겸했던 초창기 시절의 습관이 남아 감독이 유니폼을 입는 전통으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에는 정복(正服) 차림과는 다른, 유니폼을 안으로 감추는 감독이 늘어났다. 지난해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추위를 막는다며 ‘풀 오버(스웨터 종류)’를 유니폼 위에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 테리 프랑코나(보스턴 레드삭스), 에릭 웨지(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 메이저리그 몇몇 감독이 하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올해는 두산 김경문, LG 김재박 감독이 합류했다. 두 감독은 유니폼 위에 바람막이를 덧입고 더그아웃을 지킨다. 이젠 두 감독을 떠올릴 때 유니폼 차림이 아닌, 그들만의 ‘스타일’이 익숙해서, 두 감독의 가슴에 어떤 팀 이름이 그들을 상징해 주는지 퍼뜩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추위 때문에 유니폼 위에 팀 점퍼를 입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이 대목에서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사진) 전 감독이 생각난다. 그는 실업야구 롯데 감독 시절부터 자신의 유니폼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는 개성의 상징이었지만 선수들과 같은 차림이었다. 그의 유니폼은 선수단 전체의 일체감을 상징했다. 그는 그 속에서 또 한 명의 선수였고 또 한 명의 스타로 각인됐다. 무엇보다 그는 그 유니폼을 통해 선수, 팬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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