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 한국 대중문화 속속들이 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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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새봄에 핀 딸기 꽃’ ‘볼빨간’ ‘3호선 버터플라이’. 한국 인디밴드의 이름들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도 생소한 이름이지만 캐나다인 마크 러셀(38·사진)은 이들이 언제 결성됐고 어떤 곡을 냈는지 훤하게 알고 있다. 그는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꿰뚫고 있는 전문 칼럼니스트다. 올해 초에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다룬 『팝 고즈 코리아』(Pop Goes Korea)라는 책을 써서 미국에서 출간했다.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미국 관계사인 스톤 브릿지 프레스에서 냈다.

영어권 동요에서 따온 이 제목은 ‘한국 대중문화의 폭발’이란 뜻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인들이 왜 ‘반만년 역사의 한국’이라고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고조선 역사도 소개했으며, 이효리가 어떻게 섹시 아이콘이 되었는지도 상세히 다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책 서평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놀라운 발전 단계를 잘 짚어냈다”고 평가했다.

러셀이 한국에 온 건 1996년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영어를 하고 외국인이라면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라 한국에 왔다고 한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방랑자의 삶이다.

“당시엔 한국에 대해선 태권도밖에 몰랐어요. 그냥 새로운 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영어 강사 생활이 지루해지자 한국의 인디 음악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지하 술집에서 노래하는 ‘황신혜 밴드’를 만나 멤버들과 친구가 됐다. 그는 황신혜밴드뿐 아니라 가수 이상은 씨 등과 서울 홍익대 부근 바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곧이어 한국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 ‘쉬리’에서부터 ‘친구’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지요. 마침 한국 대중문화가 한 단계 도약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에서부터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까지 한국영화를 꼼꼼히 챙겨봤다. 영화제가 열리면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그러면서 뉴스위크와 할리우드 리포터를 비롯한 미국 잡지에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칼럼과 기사를 쓰게 됐다. 외국인 한류 전문가로 대학 등에서 강의 초청도 받았다. 그런 경험을 축적해 이번에 책을 낸 것이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책을 낼 계획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몽골 등의 대중문화도 연구하고 있다.

한류 전문가로 불리지만 그는 정작 ‘한류’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요즘 ‘한류’가 죽었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지만 사실 한국 대중문화는 하나의 흐름으로 그친 게 아니라 전세계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의 경제위기도 한국 대중문화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라면 독이 아닌 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97년 외환위기 때의 구조조정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켰어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젊은이가 많아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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