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명분없는 민노총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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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파업의 나라' 라고 불리는 프랑스는 파업이 없는 날이 오히려 이상할 만큼 파업이 일상화돼 있다. 이런 프랑스에서도 공공부문 등의 총파업이 벌어질 때는 의당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당연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되지만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근무조건 개선 등 정당한 요구를 법적 절차에 따라 행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 아닌가요. " 근로자들의 합법적 권리 행사인 만큼 시민생활에 다소 불편이 초래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당성을 인정받은 파업은 정부가 물리력을 동원해 막을 이유가 없고 충분한 명분을 축적한 만큼 여론을 등에 업어 파업의 효과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민주노총은 정부의 밤샘 설득에도 불구하고 27일 예정대로 파업을 강행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5대 요구 사항 가운데 어느 하나도 파업의 전제 조건이 되지못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행 조건에 대한 재협상 요구는 민주노총 스스로도 현실성 없는 요구임을 인정하고 있으니 논외로 하자. 하지만 자신들이 교섭권을 부여한 대표가 합의해 이미 법제화된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재벌총수 및 부정축재 정치인의 재산을 환수해 20조 이상의 실업기금을 조성하라" 는 주장은 축재 재산의 실체와 규모도 불분명할 뿐더러 독재적인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운운하는 것은 "밀어붙이면 된다" 는 식의 구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고통을 감내하고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토록 명분 없는 파업을 강행한들 어느 누가 지지하겠으며 결국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훈범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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