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총선시기 놓고 재야 두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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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하비비 대통령에게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 존재하는 다양한 세력을 끌어안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 - 인도네시아 기독교회연합 (GKI)

"선거일정을 늦춰잡은 것은 세력규합을 위한 시간벌기 작전이다. 1년씩이나 시간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3개월이면 충분하다. " - 인도네시아 법률구조 및 인권연합 (PHBI) 선거실시 시기를 둘러싸고 인도네시아 재야세력내에는 이처럼 상당한 시각차가 있다.

지난 19일 수하르토 당시 대통령이 '총선실시와 대선불출마' 를 선언했을 때 이를 '수하르토의 집권연장을 위한 음모' 로 규정하고 무제한 투쟁에 돌입할 것을 주장한 주전파 (主戰派) 와 경제회생을 위해 싫더라도 수하르토와 타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화전파 (和戰派)가 대립했던 양상이 재연된 셈이다.

재야세력들은 2천8백만 이슬람교도의 모임인 무하마디야의 지도자 아미엔 라이스가 24일 하비비 대통령과 면담한 뒤 '6개월 혹은 1년내 선거실시 방침' 을 전하자 크게 술렁거렸다.

환영과 반대, 경계와 낙관이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하룻동안 내부 의견조율을 거친 재야단체들은 25일 새벽부터 각 언론사에 팩스를 보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매우 신속한 반응이었다. 그만큼 선거관련 문제는 모든 정파들에 핵심적인 관심사라는 얘기다.

GKI와 인도네시아 교사 (敎師) 연합 (PGRI) 은 "하비비 대통령의 선거실시 약속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번 선거가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치러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하비비 대통령이 가시적 개혁조치를 끌어내는 데 실패한다면 선거실시 전이라도 즉각 사임해야 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건부 수용인 셈이다.

그러나 반대입장도 매우 신랄하다.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 법률가들의 모임 (CEL) 은 "하비비 자체가 족벌주의의 수호자고 수혜자다.

하비비의 즉각 사임과 의회에 의한 임시과도정부 구성만이 현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조치" 라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인 살림 사이드는 2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접촉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현재 간과하는 점이 있다.

바로 선거법 개정이다. 민주적 선거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백번 선거를 해도 진정한 민의를 반영하기 어렵다. 선거법 개정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자카르타=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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