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하비비 개각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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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도네시아 하비비 대통령의 이번 개각은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취임식에서 공언한대로 대대적인 국가개혁을 위해 정파를 초월, 각계 인사를 등용했고 정실주의와 부패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아직도 수하르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개각을 개혁을 위한 진용구축이라고 평가하면서 학생.재야 등 개혁세력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했다고 자신했다.

그의 평가대로 이번 개각에서는 정실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돼온 수하르토 전대통령의 맏딸이며 사회복지장관인 시티 하르디얀티와 역시 수하르토의 오랜 골프친구이자 금고지기인 보브 하산 무역통상장관이 물러났다. 또 수하르토의 하야를 요구한 의회내 군부 리더격인 샤르완 하미드 의원을 내각서열 1위인 내무장관에 임명, 수하르토 체제를 벗어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여기에다 국제적 명망이 있는 학자출신 10여명을 입각시켜 민주적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내각구성에도 불구하고 내각의 요직엔 수하르토의 최측근이 버티고 있어 그의 한계를 보여줬다. 최고 핵심부서인 위란토 국방장관과 미국.IMF와의 대외교섭을 책임지고 있는 알리 알라타스 외무장관을 경질하지 못했다.

즉 군부에선 수하르토의 심복들이 여전히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미국과의 막후협상에서도 수하르토의 수족을 내세워 향후 정국을 이끌어나가겠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게다가 수하르토의 측근인 페이살 탄중 전 국방장관을 정치.안보조정장관으로 기용한 것도 개혁과정에서 반 (反) 수하르토 분위기를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경제회생의 최대 걸림돌인 수하르토 및 관료 가족들의 족벌경영 타파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임된 기난자르 카르타사스미타 경제.무역장관 역시 수하르토의 오랜 측근이며 족벌경영에 대한 폐단을 의식한 적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주민폭동을 야기한 유류값 인상을 주도했다 지난달 해임된 쿤토로 망쿠스브로토가 다시 에너지장관으로 복직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개각이 발표되자 아미엔 라이스 등 야당지도자들은 일제히 "여전히 수하르토와 하비비 대통령의 정실주의로 내각이 구성됐다" 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비비 대통령 자신이 수하르토의 수족이고 추종자로 개혁의 대상인데 국가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또 다른 수하르토체제의 연속일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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