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소요서 수하르토 하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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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2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대학생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안군의 발포는 수하르토 시대의 종말을 앞당긴 결정적 계기였다. 발포에 경악한 중산층 시민들의 시위참여가 본격화하고 전국 50여개 대학 학생들의 시위도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의 철권통치하에 숨죽여오던 야당.대학교수.이슬람 지도부 등 사회지도층도 '반 (反) 수하르토' 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장례식이 치러진 13일 학생.시민 등 5천여명의 시위대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는 방화.약탈을 자행, 폭도화한 모습을 보였다.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14일에는 약탈.방화가 자카르타 전역으로 확대됐고 폭도들의 공격대상이 된 화교 등 외국인들의 본격적인 탈출 러시가 시작됐다.15일 이집트 방문일정을 단축, 급거 귀국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조건부 사의를 표명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서 소요는 다소 잦아들었으나 폭도들의 백화점 방화로 4백명 이상이 숨지는 참극이 발생했다.

16일 대규모 군병력 투입으로 자카르타의 소요는 진정됐으나 미 정부가 처음으로 정치개혁을 촉구하고 퇴역장성 15명이 수하르토의 하야를 요구하는 등 국내외 사임 압력이 고조돼 갔다. 수하르토가 개각계획을 발표, 사임의사를 번복하자 시위는 다시 격화됐고 미국은 자국민들의 철수를 지시했다.

또한 반정부 재야세력 및 사회단체들도 '국민위원회' , '인도네시아 실무포럼' 등 정치세력을 결성, 본격적인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 18일에는 수천명의 대학생 및 전직관료.이슬람교 지도자 등이 국회의사당앞 연좌농성에 돌입, 수하르토 사임을 강력히 촉구했다.

다급해진 수하르토 대통령은 19일 '총선후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비판세력들은 속임수라며 재차 사임을 촉구했고 하르모코 국회의장도 수하르토 하야를 요구하는 등 의회마저 수하르토에 등을 돌렸다. 20일 '국민 각성의 날' 시위는 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으나 국회의사당 시위학생들이 1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반 수하르토'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동안 수하르토 정권에 유화적 태도를 취했던 미 정부도 수하르토의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처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결국 21일 대통령직을 공식 사임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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