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개발독재의 씁쓸한 종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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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로 지배해온 수하르토 대통령이 21일 드디어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사임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나의 과오를 용서하기 바란다" 고 끝을 맺었다.

그의 집권과 성장.몰락을 지켜보며 들었던 생각은 아시아의 경제신화를 이끌었던 '개발독재' 의 환상이 수하르토의 하야와 함께 이제 막을 내리게 됐다는 점이다. '개발이냐, 아니면 균형적 성장이 우선이냐' 는 논란을 잠재우며 한때 세계경제계의 화려한 주목을 받았던 개발독재의 공과 (功過)에 대한 시비도 이로써 종지부를 찍게 됐다.

지난 68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인도네시아의 경제성장을 주도했으나 무소불위 (無所不爲) 의 권력에 빠져 부패와 불평등.타락의 대명사로 전락한 수하르토는 이 시대 개발독재의 상징이다. 68년 대통령에 오른 수하르토는 끝없는 욕심으로 권력을 좇다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70년대부터 추진한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인도네시아를 동남아 '성장 삼각지대' 의 한 축으로 올려 놓았던 그의 공적도 32년의 장기독재와 그에 따른 부패로 빛을 잃었다. 개발독재는 결국 경제적 '번영과 개발' 이라는 미명아래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의 권력유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게 수하르토 몰락의 교훈이다.

그는 외형적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그 이면에는 인권유린과 빈부격차.정적 (政敵) 탄압이라는 어두운 그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남미의 군부독재를 시작으로 70년대 한국의 박정희 (朴正熙) 정권, 그리고 국민당 통치하의 대만 등에서 권력유지의 너울로 내세워졌던 개발독재도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다.

왜곡된 사회구조와 부 (富) 의 편중, 인권유린으로 인해 가능했던 반목과 대립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열린 사회를 향한 진지한 노력과 균형적인 성장' - .수하르토가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서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 생각해본 가치들이다.

유광종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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