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집권세력도 분열 가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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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의 인도네시아사태가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지배층엔 큰 변화가 일고 있다.

32년동안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던 집권세력이 분열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하르토의 절대적 카리스마도 빛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권세력의 분열은 수하르토의 하야에 대한 찬반 여부로 표면화됐다.

지난 18일 하르모코 국회의장은 의회건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하르토의 사임만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변했다. 특히 기자회견장에는 의회내 군부대표들까지 배석해 지배계층의 분열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반영했다.

수하르토의 최측근중 하나며 현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3위인 그의 이같은 발언은 권위의 상징이던 수하르토가 비판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하르모코의 이날 발언은 전날 있었던 집권 골카르당 중진이며 3월까지 환경장관을 지냈던 사르워노 쿠수마이트마자 의원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정치권의 이같은 변화는 학생시위가 격화된 이후 이슬람단체.학계 등 이른바 지식층의 반 (反) 수하르토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유혈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15일 이후 전국의 대학교수.이슬람지도자.퇴역장성들까지 연일 학생들의 개혁과 수하르토 퇴진 요구에 적극 동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2천8백만명의 회원을 가진 이슬람단체 무하마디야의 지도자인 아미엔 라이스는 20일 수하르토 퇴진운동을 끝까지 벌이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군과 함께 수하르토체제의 정신적 버팀목이 돼온 이슬람세계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집권세력내 이같은 변화는 곧바로 기존체제를 옹호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노출했다.

위란토 국방장관은 하르모코의 대통령퇴진 발언이 불법이란 사실을 분명히 하고 법에 따른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는 지배체제내 반수하르토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최형규 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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