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산하 우리풍물]19.안동시 풍천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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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계급사회속에서 억눌렸던 한을 예술로 한차원 승화시킨 서민들의 풍자극이 탈놀이다. 쪽박을 허리에 찬 할미탈의 고달픈 인생사는 영낙없는 내 신세를 대변하는듯 하고 양반의 탈을 쓴 사람들이 여인네들에게 야릇한 눈길을 보내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낙동강이 마을을 S자로 굽이 돌아 '물도리동 (洞)' 으로 불리우는 하회마을 (경북안동시풍천면) .이 곳에는 옛부터 '하회별신굿탈놀이' 라는 우리의 전통놀이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하회탈놀이는 고려시대 중반이후인 1천2백년경 시작됐다. 이때부터 서민들은 탈을 쓰고 양반.선비.중등 지배층의 위선을 비웃는가 하면 각시 (하회마을의 수호신이었던 '성황님' 의 현신) 를 즐겁게 하는 무동.혼례.신방마당등으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해왔다.

"하회탈놀이는 3년, 5년, 10년에 한번씩 마을에 우환이 있을 때 열리는 마을굿의 일부분입니다.양반들은 탈놀이를 경제적으로 지원해 서민들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죠. "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임형규 회장의 설명이다.

하회탈놀이는 무동.주지.백정.할미.파계승.양반선비.혼례.신방등 여덟 마당. 그러나 지금은 혼례.신방마당을 제외한 여섯마당만 공연된다. 탈놀이에 등장하는 악기는 북.꽹과리.징. 탈놀이는 이같은 풍악을 배경음악으로 이야기.타령.춤사위를 보여줬다.

'둥 - 둥 - 둥~, 꽤갱 - 꽤갱 - 꽤갱~. ' 무동마당으로 시작되는 탈놀이에는 북.꽹과리의 세마치 장단에 맞춰 탈을 쓴 각시.양반.선비.백정.중.할미.부네 등이 등장한다. 탈놀이는 백정마당부터 달아오른다.

험악한 탈을 쓴 백정이 등장해 소를 잡고 염통과 우랑 (소부랄) 을 떼어내 성을 금기시해온 지배계층을 놀린다. "늙은 양반 젊은 마느래 둘씩 다리고 사는 데는 우랑아니고는 안될꺼시네. "

할미마당은 한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여인의 신세타령이 흘러나온다. 파계승마당은 고려시대 불교의 타락상을 비판하는 무대. '부네' 라는 여인의 유혹에 빠진 중의 행동을 통해 당시 종교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양반.선비마당에서는 양반과 선비의 치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양반과 선비가 '부네' 를 차지하기 위해 엉터리 학식을 자랑하고 나중에는 할미와 백정에게 망신을 톡톡히 당한다.

탈놀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탈 그 자체. 하회탈은 얼굴 윤곽이나 눈썹의 간격을 조정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험악하게 보이려면 탈의 주름살.눈매.코주변등 윤곽의 선을 깊게 파고 교활하게 보이려면 눈썹사이를 좁게 한다. 이중 양반탈은 늘어진 눈썹, 엷은 주름살등 여유로운 모습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또 양반.선비.중.백정탈은 턱을 분리시켜 말을 할 때 턱이 움직이도록 해 한층 연기가 실감나도록 했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동쪽에 화산이 있어 외부와 격리됐던 하회마을. 마을의 평안은 비단 지형상의 잇점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이곳 사람들에게는 탈놀이와 같이 계층간의 갈등을 완화시켜주는 독특한 완충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하회마을 = 송명석 기자

〈smsj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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