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면세점 마케팅팀에 합격한 박정애씨.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일하다 잠깐 포즈를 취한 그에게 숱한 구직 실패의 ‘악몽’은 기분 좋은 ‘추억’이 됐다. [강정현 기자]
“마케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람을 끌어모아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 임원을 비롯한 면접관들은 채점표에 무언가 적어 넣었다. 그러고는 일주일 뒤인 5월 7일. 박씨는 전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지원자는 3000명이었는데, 단 세 명만을 뽑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이다. 취업 전적 ‘20전 20패’라는 고난의 행군을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박씨는 중앙일보의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다(본지 4월 7일자 ‘취업과 창업’ 섹션 1~3면). 그때 10대 그룹 인사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자문단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박씨는 “고객에게 꿈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답했었다. 자문단은 고개를 저으며 모범생 같은 답변보다는 현실감이 있는 대답을 권했다. 경영학 전공 이유에 대해서도 “돈을 벌고 싶어 경영학을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기업이 선호한다고 조언해 줬다. AK 면접 때 박씨의 답변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꿰뚫고 있는 ‘기업형 인재’라는 인상을 주는 게 좋다”는 자문단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영자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캐나다에선 물건을 팔아봤다. 노인공원을 정비하는 봉사활동도 벌였다. 취업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토익 성적은 900점이 넘는다. 그는 “이처럼 폭 넓은 경험을 쌓았는데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이유를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친척들 볼 때가 가장 죄송스러웠다. 용돈을 달라고 할 때는 눈치도 보였고…”라며 막막하고 불안한 심정을 토로해 왔다. 이 때문에 컨설팅 때 그는 냉정한 지적을 받았다. 자문단은 “다양한 경험을 했으나 마케팅 분야에 해당하는 역량과 연관성이 부족하다”(정준수 KT 인사담당 상무)는 등의 따끔한 평가를 내렸다. 박씨의 어머니는 “그동안 왜 내 딸이 취업을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본지 4월 14일자에 등장했던 손성태(28)씨. 그는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해외 유학파다. 일본에서 어학연수도 한 그는 “유학 경험이 있어 쉽게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자문단은 “외국 경험을 가진 수많은 경쟁자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점이 없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기업 인사담당자와의 면접장에서도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에 합격해 출근을 앞두고 있다.
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