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고, 구질구질하고, 나른한 인생이 날아올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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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06면

제목이 많은 것을 얘기하는 영화다. 토끼 아닌 거북이니 승자보다는 패자, 영웅보다는 반영웅 영화일 터다. 그래도 거북이는 달린다. 마지막 한 조각 희망과 낙관의 끈을 남겨놓았다는 뜻이다.무대는 충청남도 예산. 우리의 주인공은 찌질이 형사 조필성(김윤석)이다. 워낙 조용한 소도시라 지역 행사인 소싸움 대회에 동원되는 것이 형사들의 주요 일과일 정도다. 폼 안 나고 대접 못 받는 것은 집에서도 마찬가지. 만화가게를 하는 5살 연상의 부인(견미리)에게 쥐여살면서, 늘 무능한 가장이라 타박 받는다.

그 조필성이 아내 통장에서 빼돌린 돈으로 소싸움에 한탕 거는 데서부터 영화가 시작한다. 어랏, 엉겁결에 주워들은 정보 덕에 큰돈을 딴 것까지는 좋았는데 돈가방을 모르는 청년에게 빼앗기고 만다. 한 방에 조필성을 때려눕힌 날쌘 청년 기태(정경호)는 알고 보니 악명이 자자한 탈주범. 공개수배 중이고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안 그래도 정직 중이던 조필성은 혈혈단신 범인 추격에 나선다. 그 끈질긴 추격전에, 현상금에 눈이 먼 꺼벙한 동네 건달들이 끼어든다.

전체 얘기는 형사와 범인의 추격전이지만, 통상적 형사물의 스펙터클 액션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특히 김윤석을 명실상부 스타덤에 올린 전작 ‘추격자’급 기대는 제발 갖지 않기를 권한다(참고로 홍보사는 스스로 ‘농촌액션’이라는 ‘저렴한’ 표현을 썼다). 범인에 비해 스타일 떨어지는 조필성의 액션은 구질구질한 사투에 가깝고, 건달 무리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들도 좌충우돌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런 루저들의 코믹 에피소드들이 자아내는 따뜻하고, 때로는 코끝 찡한 인간미가 이 영화를 뻔한 장르영화에서 구해 올린다.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설 자리를 잃은 조필성은, 이 시대 위축된 서민 가장들의 대변자로 보인다. 갖은 ‘개고생’ 끝에 사건을 해결한 그가 딸의 학교 행사에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느려 터진 거북이가 마침내 날아오른 순간. 루저들의 희망가로 손색 없다. 형사물이지만 가족·휴먼 코미디로 봐도 무방한 영화. 김윤석의 전작들을 따지자면 ‘추격자’보다는 실직 가장이 록밴드를 통해 희망을 찾는 ‘즐거운 인생’ 쪽에 훨씬 가깝다.

연민을 자아내는 구수한 서민성을 연기한 김윤석의 호연이 돋보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속옷 바람으로 잠들어 남편의 동한 마음을 단번에 가시게 하는 억척 부인 견미리와의 호흡도 좋다. 그의 적당히 살집 오른 몸매는 조필성의 모질지 못한 캐릭터에 딱 맞아떨어진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평소 운동도 안 하고 몸매 관리도 전혀 안 한 40대 서민 남자의 전형적인 몸놀림’이다.

김윤석은 “의식적으로 살을 찌우지 않았는데도 필성 역을 맡은 후 저절로 몸이 불었다”며 “극중 조필성의 나른함은, 실제 나와 가장 닮았다”고 말했다. 또 범인과 세 차례 찍은 액션신에 대해서는 “ ‘추격자’에서 하정우와의 액션은 보기에는 아주 과격해도 실제로는 서로 다치지 않게 애무하듯 찍었지만, 이번 액션은 내게서 멋진 동작이라도 나오면 곧바로 NG, 아주 본능적인 액션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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