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무덤 된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8호 12면

 당신은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을 뿐더러 잡은 물고기를 세 조각으로 떠서 먹을 사람이야.”
일본 소설 『지혼식』(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김미영 옮김, 창해)에서 이 구절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세상의 대부분 남편이 그렇지 않을까요. 연인이나 아내와 티격태격하다가 “아니, 잡은 물고기에 먹이 주는 것 봤어?”라며 가볍게 받아 넘겨 보지 않은 남성이 얼마나 될까요.

김성희 기자의 BOOK KEY

이 책은 결혼을 소재로 한 8편의 단편을 모았습니다. 출판사 얘기로는 20~30대 여성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여류작가가 쓴 것이라네요. 아닌 게 아니라 각각의 소설엔 빼어난 단편 특유의 반전이 없습니다. 대신 섬세한 심리묘사가 눈길을 끕니다.
앞서의 구절은 책의 첫 작품 ‘도게자(土下座)’에 나옵니다. ‘도게자’란 옛날 귀빈들이 행차할 때 땅에 꿇어앉아 납작 엎드려 절하는 일본의 옛 풍습이라는 요즘엔 아주 정중히 사과하거나 간절히 부탁하는 일을 뜻한답니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자손님에게 실수로 음식을 엎지릅니다. 그에 대한 사과를 하러 갔다가 인연이 돼 결혼을 하는데 언제부턴가 아내가 틀어집니다. 마음 상한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가 “당신은 결혼하고 나서 변했어”라며 이런 비수를 날린 겁니다. 레스토랑을 예약해 함께 밥도 먹고 내 애기도 잘 들어주는 등 결혼 전 좋은 매너를 보여 주던 사람이 영 딴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죠.

남편은 대꾸를 안 합니다. 잠자코 집을 나와 외박을 합니다. 일종의 기 싸움 때문입니다. 남자는 친구가 되길, 결혼해 주기를 여자에게서 허락받아온 처지입니다. 주도권을 쥐고 싶은 아내, 무릎 꿇기를 거부하는 남편이 원만한 결혼 생활을 이어갈 리 없죠. 한쪽은 무시하고 다른 한쪽은 집요하게 집적댑니다.

음식에 바퀴벌레를 넣고, 남편은 이를 몰래 버리고…. 결혼 생활은 지옥으로 변하죠. 겉으로는 웃고 예의를 지키고 챙겨주지만 그렇습니다. 작가는 이를 남자의 관점에서, 핀셋으로 집어내듯 그려냅니다.

작품 속 결혼은 이처럼 하나같이 일그러지고 위태롭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금슬이 좋은 결혼 생활도 한 꺼풀 들춰 보면 환상이라는 게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각기 불행한 집안에서 자란 오빠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인내하다가 결국은 폭발하는 ‘원앙’, “종이조각 한 장과 반지 하나로 인연을 맺는 일은 재미없다고, 함께 살면 그것이 결혼”이란 생각에 십 년이나 동거하다 흔들리는 사랑을 그린 ‘지혼식’ 등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읽을 만합니다. 멋진 문장도 없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없지만 결혼의 의미, 부부의 행복에 대해 생각거리를 주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두고 ‘연애의 무덤’이라거니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둥 말이 많지만 결혼 그 자체가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하기 나름이고, 모든 사람이 그렇듯 부부도 제각각 나름의 짐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이 책을 보며 ‘나도 그런데…’ 할 수도,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 그런데 ‘도게자’에서 아내의 질타를 듣던 남편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잡은 물고기를 세 조각으로 떠서 먹을 놈이라고? ‘냉동 참치’ 주제에 잘도 지껄인다’라고. 왜 아내를 ‘냉동 참치’라 하는지는 책에 있습니다.


경력 27년차 기자로 고려대 초빙교수를 거쳐 출판을 맡고 있다. 특기 는 책 읽기.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다. 『맛있는 책읽기』등 3권의 책을 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