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에 띄운 한 교사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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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또 스승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이 땅의 교사들을 위한 1년에 한번 있는 잔칫날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잔칫날 주인공들이 즐겁지 않으니 웬일일까요. 언제부터인지 스승의 날은 교사와 아이들, 학부모에게 모두 거북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사들이 '촌지 교사' 요 '파렴치한 교사' 인 것처럼 말하다, 갑자기 '은혜' 에 감사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은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그냥 보내기가 미안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금품도 받지 않습니다' 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학교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정통신문을 받고 기뻐할 학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말은 경우에 따라 '아니 누가 선물한댔나' '그동안 엄청나게 받은 모양이군' '아직도 금품이 오고 가는 모양이야' 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아니라 어떤 날이라 해도, 진심으로 감사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이 아닌, 마지못해 부담을 느끼며 마련한 선물은 싫습니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차라리 스승의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들 하겠습니까. 기념식이고, 선물이고, 카네이션이고 다 싫고 차라리 하루쯤 푹 쉬게 해줬으면 좋겠다고들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먼지와 백묵가루와 말 안 듣는 아이들로부터 해방돼, 푸른 산천 속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쉬고 싶기도 합니다.

점점 교사로 살아 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들과 다른 세대를 살아 온 교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아이들을 상대하기가 사실 벅찹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교사는 얼굴 예쁘고 늘 웃어야 하고, 아프면 안되고, 유머가 풍부해 아이들을 늘 웃겨야 하고,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큰소리 내지 않고 좋은 말로 다독이고, 때리면 더욱 안되고, 아이디어가 뛰어나 늘 이벤트를 보여주고, 아이들의 행동은 뭐든지 다 이해해야 하는 선생님입니다.게다가 영어도 잘해야지요, 컴퓨터도 잘 다뤄야지요, 수업기술도 좋아야 하고요, 교육추세에 재빨리 적응하는 능력도 없으면 안됩니다.

이러니 이 땅에서 교사로 살아 가려면 신처럼 완벽한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신이 아닙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가 혹시 아이들 마음에 상처나 주지 않을까 후회하며 잠을 설치는 마음 여린 한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이니 때로는 실수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 실수가 보통사람이 아니라 '교사' 이기 때문에 쉽사리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사들이 다 그러려니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 주위에는 같은 교사가 봐도 존경스러운 교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일은 몇몇 못난 교사들의 실수 때문에 그런 분들의 힘이 빠지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의 날이 몹시 어색하고 싫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교사들은 이 땅의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마음을 새롭게 다집니다.

또 교사에게 보내는 사회의 큰 믿음에 보답하려는 각오도 해봅니다.

이부영 장안초등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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