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일자리 나누기’ … 실업 대란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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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같이 구조조정 대신 오히려 인력을 더 뽑은 기업들도 많지만 국내의 전반적인 고용시장은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도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이 우려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아 국내 고용시장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경제가 나빠졌지만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려는(일·만·나) 노력을 해 우려했던 ‘고용 대란’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1만9000명(-0.9%) 줄었다. 이 감소폭은 4월 18만8000명보다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실업자를 경제활동인구로 나눈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3.0%에서 올 3월 4.0%까지 가파르게 올랐다가 4, 5월은 3.8%에 머무르고 있다. 실업률 급증세가 다소 주춤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국내 고용 시장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선전하고 있다”며 “앞으로 고용이 조금 더 악화할 수는 있지만 크게 악화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 바람은 불지 않고 있다. 대기업은 감원보다는 고용 유지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11일 증권정보제공업체인 FN가이드에 따르면 중·대형사 위주로 구성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603곳의 종업원 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지난해 9월 91만3130명에서 올해 3월 91만837명으로 2293명(0.25%) 감소했다. 시가총액 상위 15개사로 국한하면 감원율은 0.1%에 불과하다. 반면 소형 업체가 주로 등록된 코스닥시장의 944개 상장사는 상대적으로 커 같은 기간 3.3% 감소했다.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9월 1만8055명에서 올해 3월에는 2만526명으로 직원을 늘린 것을 비롯해 KT&G(8.89%), LG(5.97%), SK에너지(5.27%) 등은 종업원 수를 오히려 늘렸다. 인력을 줄인 곳은 일부에 불과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박성준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시장이 심각할 걸로 예상했는데 상장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자제했다”며 “이는 외환위기 당시 실시했던 강제적 인력 구조조정이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고용 총량을 줄이기보다 임금체계를 바꾸고, 근무 시간을 조정해 대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을 썼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4월 전국 561개 기업을 대상으로 ‘2009년 신규 인력 채용 동태’를 조사한 결과 신규 인력을 뽑은 이유로 중소기업은 ‘결원 충원’(41.9%)을, 대기업은 ‘일자리 나누기’(26.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중소기업연구원 산업연구팀 백필규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호소해 왔는데 요즘에는 예전보다 이런 소리가 많이 줄었다”며 “구직자의 기대치가 낮아진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달리 상당수 중소기업은 실적 악화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국내의 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이제부터이기 때문에 앞으로 고용 사정이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상무는 “최근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인력 구조조정은 안 한다지만 구조조정의 결과는 신규 채용 억제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용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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