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자에게 400억원 지급 … 공무원들은 8억 빼먹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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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구 동구의 사회복지 7급 공무원 A씨는 2003년 3월 누나 가족의 주소지를 자기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몽땅 옮겼다. 그는 누나 가족을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허위 등록한 뒤 최근까지 1억2200만원을 빼돌렸다. A씨는 또 본인이 생계비 지급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저소득자를 자신이 담당하는 동(洞)으로 허위 전입시켜 6년간 4000만원을 챙겼다.

전북 남원시의 한 정신병원 행정실장인 B씨. 그에게 환자는 ‘돈 주머니’였다. B씨는 2000년 2월부터 올 5월까지 입원환자 중 기초생활보장수급자 23명의 계좌로 들어오는 생계비나 주거비 4억5000만원을 가로챘다.

복지예산 집행실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감사원은 10일 전국 200개 시·군·구의 복지예산 집행실태를 점검한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현재까지 14개 지자체에서 19명(공무원 18명)이 사회복지예산 8억5000만원을 빼돌려오다 적발됐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7건(5억49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4건(5900만원), 경기·충남 각 2건 등이었다.

수법도 다양했다. 복지담당 공무원이 가족이나 허위 수급자를 내세워 부당 수령한 경우가 9건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 성동구의 사회복지 6급 공무원 C씨는 2005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허위 수급자를 만들어 1900만원을 빼돌렸다. 모친과 장모·처제가 동원됐다. 이들을 자신이 근무하는 동에 위장 전입시켜 77차례에 걸쳐 복지예산을 빼돌렸다.

제도적 허점도 많았다. 올해 2~4월 노동부에 구직을 신청한 7600명은 근로 능력이 없는 것처럼 꾸며 보건복지가족부에 생계비를 신청했다. 근로 능력 여부에 따라 매월 지급되는 금액은 5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감사원은 복지부가 근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해 별다른 조처 없이 400억여원을 초과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하거나 국외 이주 등으로 수급 대상이 아닌 무자격자 8400명에게도 18억여원의 기초노령연금이 지급됐다. 수급자의 사망 사실을 감춘 채 급여를 받아 챙긴 경우도 1000명, 10억원 규모였다.

민간 보육시설의 ‘보조금 빼돌리기’도 심각했다. 115개 보육시설을 표본조사한 결과 40개 시설(34.7%)에서 보육교사를 허위 신고해 보조금 6억원을 부당 수령했다. 감사원은 적발된 횡령 공무원과 감독자에 대해 수사 의뢰, 문책하는 한편 고의적인 부정 수급자에 대해서는 수급액 환수 및 고발 조치하도록 해당 기관에 요구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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