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인플레 우려” “침체 겨우 벗어났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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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지금 미국에선 인플레이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해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쏟아 부은 자금 때문에 심각한 인플레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와 지금은 인플레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반론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경기 침체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조만간 FRB가 인플레에 대비해 기준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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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금리를 보는 두 시각=인플레 논쟁을 촉발한 것은 미국 국채 금리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3월 연 2.5% 수준에서 지난 주말 연 3.9%로 치솟았다. 시장에선 이를 ‘경기 회복에 대한 신호’로 봤다. 경제가 안정될 기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국채보다 좀 더 위험하지만 수익률이 높은 주식 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풀이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는 올랐다는 것이다. 프린스턴대 폴 크루그먼(경제학) 교수는 지난달 28일 뉴욕 타임스(NYT) 칼럼에서 “최근의 국채 금리 상승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투자자들이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하버드대 니알 퍼거슨(역사학) 교수는 이를 정반대로 해석했다. 그는 “인플레에 대한 시장의 공포가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재정적자가 커질 것이란 우려 때문에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인플레 가능성 분분=미국뿐 아니라 인플레 우려는 전 세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8일 로이터에 따르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경제위기가 끝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플레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도 이 자리에서 “이제는 경기부양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들이 시중 자금을 조이기 위해 정책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위르겐 슈타르크 집행이사는 이날 “유로존에서 인플레 조짐이 보이면 ECB는 즉시 초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조만간 금리를 인상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5월 실업률이 26년 만의 최고치인 9.4%를 기록하는 등 아직 경기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정부·FRB가 푼 돈을 은행들이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시중엔 자금이 많이 돌고 있지 않아 인플레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루그먼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침체에서 겨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뿐 본격 회복을 이끌 수준은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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