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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외국도 구조조정 지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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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의 구조조정이 우선순위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등 지지부진하다는 우려와 질책의 소리가 나라 안팎으로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외국투자가들과 금융기관들이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아직 크다고 보고, 구조조정의 추이와 결과를 봐가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와 대출을 결정하겠다는 관망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투자.사업조정이나 은행의 부실채권정리는 단시일내에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조정이 끝난 후에도 그 효과가 기업의 활성화로 나타나려면 2~3년은 걸린다. 외국인들이 그때까지 지켜보겠다고 해 세계금융시장과의 연계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는 줄곧 외환위기 재연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그 여파로 대외신인도가 다시 하락하는 등 한국경제는 외환불안.구조조정 부진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국내기업이 무역신용을 조달하지 못해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자본재와 원자재를 제때에 수입하지 못하면 투자가 위축돼 불황이 심화될 것이다.

기업이 투자와 사업을 조정하려면 일부 자산을 외국인들에게 매각하고 새로운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외국으로부터 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의 금융기관.투자가들이 한국시장을 기피해 부동산이나 공장설비 등의 자산가격이 더 떨어지게 되면 기업의 구조조정 능력은 더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고금리정책도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와 대출에 나서지 않고 있는 한 고금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 (IMF) 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금리정책이 장기화되면 기업은 수익성이 있는 투자마저 포기하게 될 것이며 우량 및 유망기업마저 희생돼 실업이 급증하고 산업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등 구조조정은 더욱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앞으로 기업과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무리없이 밀고나가려면 이제는 외국투자가.금융기관, 그리고 국제기구 등이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회복돼 세계금융시장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국내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도록 협조해줄 때가 됐다. 그러면 어떻게 협조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로 외국은행들은 원리금 상환에 대한 정부보증이나 요구하는 쉬운 길을 택하기보다 그들의 자국내 부실기업을 정리하듯이 돈을 빌려준 한국기업들과 국내금융기관의 부채를 종합적으로 조정해 이들의 회생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G7 정부당국은 이미 약속한 80억달러를 시장금리로 우리정부에 빌려줘 구조조정자금으로 쓰도록 허용해야 한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해 금융기관을 정상화하고 기업을 활성화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물론 대부분의 재원은 우리가 스스로 조달해야 하겠지만 구조조정비용이 1백조원을 넘어 국내총생산 (GDP) 의 20%에 이른다면 우리 힘만으로는 이 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G7 정부가 약속했던 80억달러를 지원해 구조조정의 물꼬를 터줘야 외국인의 직접투자와 신규자금의 유입이 순조로워지는 등 국제금융거래가 정상화돼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로 IMF와 G7 정부당국은 국제투자가.금융기관에 국내금리의 하향조정이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설득해 외환시장의 불안정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국내금리가 내려갈 수 있도록 재정.금융 긴축의 완화를 유도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 나름으로 구조조정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만의 노력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하기에는 이미 너무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만약 외국 정부나 투자가와 금융기관들이 방관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그 결과는 외국의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때가 됐다.

박영철<한국금융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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