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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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윤학(1965~ )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 전문

진흙탕에 덤프트럭 바퀴 자국 선명하다
가라앉은 진흙탕 물을 헝클어뜨린
바퀴 자국 선명하다
바퀴 자국 위에 바퀴 자국
어디로든 가기 위해
남이 남긴 흔적을 지워야 한다
다시 흔적을 남겨야 한다
물컹한 진흙탕을 짓이기고 지나간
바퀴 자국, 진흙탕을 보는 사람 뇌리에
바퀴 자국이 새겨진다
하늘도 구름도 산 그림자도
바퀴 자국을 갖는다
진흙탕 물이 빠져 더욱
선명한 바퀴 자국
끈적거리는 진흙탕 바퀴 자국
어디론가 가고 있는 바퀴 자국



포장된 길 위에는 바퀴 자국이 남지 않는다. 신발에도 타이어에도 별 흔적이 없다. 이따금 차에 치인 고양이의 피를 바퀴들이 나누어 갖지만 금세 희미해진다. 그러나 마음은 포장도로가 아니다. 마음이라는 물컹한 진흙탕에는 누군가 남기고 간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 남길 수밖에 없었던 바퀴 자국, 그 질주의 흔적을 오래 들여다보는 날이 있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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