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즐기는데 ‘장애’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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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다섯 명의 ‘여섯소리’는 장애인 가수 이상구씨(마이크 잡은 사람)가 비장애인 안기원·이형규·조혜진(앞줄 오른쪽부터)씨 등과 함께 2000년 결성한 천안의 통기타그룹이다. 사진엔 김덕수씨가 몸이 아파 빠졌다. [조영회 기자]

이상구(42)씨는 통기타 가수로 천안에서 활동한지 20년이 넘었다.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이씨는 9년 전 지역 뮤지션 네 명과 함께 통기타모임 ‘여섯소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일주일 후 16일(화) 오후 7시 천안역 광장에서 ‘의미 있는 무대’에 선다.

여섯소리가 중심이 돼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울림의 장을 연다. “장애인도 예술의 끼를 맘껏 발휘하고, 또 그걸 즐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결성된 충남장애인문화협회 문화공연단의 창단 공연이다. 대중가수·국악인·밴드·무용인 등 총 40여 명의 천안·아산 대중예술인이 참여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한마음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춤추려 한다.

그 중심에 여섯소리가 선다. 여섯소리는 여섯 명이 아니라 기타 여섯 줄의 소리를 말한다. 모두가 지역에서 활동 중인 통기타 가수다. 각자 카페 등 라이브 무대에서 일한다. 그리고 가끔씩 뭉쳐 ‘좋은 일’을 위해 공연한다. 모두 보컬이 가능해 노래 연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공연에서 무슨 노래를 할거니까, 이번엔 네가 보컬을 하고, 내가 화음 하이(high) 맡고, 네가 로우(low)를 해라” 하면 끝이다. 올 4월 리메이크 앨범(작은 사진)을 냈다. 2000장을 찍었는 데 두 달만에 거진 다 팔렸다.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남을 위해 쓴다.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그들 가슴 속에서 오래 기억되고 싶어서다.

이씨가 최근 장애인문화협회 사무처장의 중책을 맡았다. “장애를 갖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죠.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 소중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이씨는 비장애인이면서 자신을 돕는 멤버들이 고맙다. 그들이 없으면 문화공연단 출범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엔터테인멘트 기획사 대표인 안기원(35)씨, 단국대 그룹 ‘거웅’ 출신인 이형규(35)·조혜진(29·여)씨, 김덕수(39·평택)씨. 이들은 모두 천안 신방동 ‘호카이’, 쌍용동 ‘라이브존’, 아산 ‘카라카라’ 등 지역 라이브카페에서 알려진 가수들이다. 안씨는 맹인밴드 ‘소리에 사랑을 싣고’의 데뷔를 돕고 있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이번 리메이크 앨범에도 담은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이다.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쳐다보면 하늘만 바라보고, 내 맘을 모르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이씨는 “항상 목표를 정해 그걸 향해 뛰었지만 이루기 힘들었다”며 “그러나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고 했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이미영(40·여)씨와 1992년 듀엣곡을 취입하면서 방송에도 몇 번 출연했지만 크게 빛은 보진 못했다.

그는 3년 전 늦게 ‘사랑’을 만나 결혼, 이제 28개월된 아들을 얻었다. 어린 아들의 초롱 초롱한 눈을 보면 용기가 솟는다. 공연단 창단을 이룬 힘도 거기서 얻었다. 주위엔 맑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많다. 노래강사로 활동 중인 김미선(43·여)씨, 스포츠댄스팀 ‘레드폭스’리더 김인숙(39·여)씨, KBS전국장애인가요제서 본상을 탄 모관순(42)씨, 좌식무용을 하는 차은주(34·여)씨 등.

문화공연단엔 비장애인도 많다. 천안서 활동하는 퓨전밴드 ‘옐로우버드’ 리더 장유진(45)씨는 이씨의 음악 선배로서 든든한 후원자다. 자신이 경영하는 신부동 ‘몽크’에 출연 중이다. 문화공연단 단장은 ‘카스바의 연인’을 부른 윤희상씨에게 맡아달라 부탁했다. 윤씨는 수 년전 지방공연을 가던 중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지만 최근 재기,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연습장에 모인 여섯소리가 조덕배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뛰어 갈텐데~ 훨~훨~ 날아갈텐데~. “모든 장애인이 노랫말처럼 됐으면 좋겠다. 마음만이라도….” 이씨의 바람이다.

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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