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숙자 급증 대응방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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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노숙자 (露宿者)가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오는 6월께는 노숙자의 수가 약3천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노숙자란 누구인가. 서구에서는 노숙자를 홈리스 (homeless) 라 부른다. 고정적인 야간주거지가 없거나 거처를 마련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75년 내무부 훈령과 87년 보건사회부 훈령에는 노숙자를 부랑인으로 취급했다.

경제위기가 빚은 희생자 부랑인이란 건전한 사회질서의 유지를 곤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활동능력이 결여된 정신착란자· 알콜중독자·걸인·앵벌이·불구 폐질자 등으로 규정했다.

다분히 우범자나 불순분자라는 인식이 내재해 있었다.

서구에서는 홈리스를 부정적인 인식이나 낙인을 부여하지 않고 사회구조적 희생자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정부에서 발표되는 자료에는 부랑인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노숙자로 호칭하고 있다. 요즈음의 노숙자 증가는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와 직접적인 연관을 지닌다. 급증한 노숙자의 대부분은 부랑인이나 행려자 (行旅者)가 아니다. 그들은 해고당한 사람, 부도로 사업에 실패한 사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IMF라는 국가경제 위기 상황이 빚은 구조적 희생자들이다.

그래서 최근 발생한 노숙자들은 개인의 책임보다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새로운 노숙자들은 실직에 대한 절망감과 사회와 정부에 대한 배신감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이들을 방치할 경우 집단화된 돌출행동이 새로운 사회불안요소로 등장할지 모른다. 종합대책이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정부는 약 5조원의 실업대책 재원확보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의 서민생계안정대책으로 한시적 생활보호사업, 대도시 노숙자 특별대책, 취로사업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양한 대책이 수립되고 있지만 문제가 많다.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단기처방 위주의 사업으로 짜여 있다. 당장 금년도에 소요될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숙자 문제와 관련해 더욱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노동관련 부서와 복지관련 부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전혀 조화와 협조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다. 서울시가 노숙행위를 전면금지하고 이들을 소개 (疏開) 하는 방식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 한마디로 발상법의 전환이 필요하다.

희망과 용기 줄 대책을 첫째, 노숙자 문제를 실업대책과 연계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를 책임지는 통합된 조정기구가 필요하다.

둘째, 당장 필요한 대책으로 현재 응급대책을 시행하되 먼저 노숙자 실직 정보 및 훈련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재기를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셋째, 공공기관·민간 (시민) 단체·종교기관 등에서 산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노숙자 보호 및 지원업무간 상호 정보교류와 업무협조가 가능하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이는 보다 체계적인 노숙자문제 접근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노숙자문제를 정부가 전부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된다.

민간단체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미 선진 외국에서 널리 활성화된 민간 노숙자 숙식·훈련센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영국은 IMF구제금융 당시 실직자와 노숙자를 위한 주거안정을 목표로 새로운 '주거법 (1977)' 의 제정 및 직업훈련 등 종합적 접근으로 난국을 극복한 바 있다. 실직 노숙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종합대책이 필요한 때다.

하성규 중앙대 주택정책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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