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제자리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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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노무현- 이 석 자가 후세의 한국사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너무나 상반된 관점과 모순된 논리로 진행되어 왔다. 필자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 2년간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면서 언론에 보도되고 세상에서 알고 있는 그와 실제 그의 모습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음을 느끼고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학벌은 낮았으나 학식은 높았으며, 언행에 격식을 차리지 않았으나 생각은 깊었으며, 원칙을 굽히지는 않았으나 사람을 대할 때는 먼저 고개를 숙이는 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논리적 사고와 동시에 날카로운 직관력을 가진 분이었다. 역사와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늘 책을 놓지 않고 탐구하며 사색하는 분이었다. 그를 대립과 갈등의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가까이서 본 그는 겸손하고 설득당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실용적 대안을 중시하는 분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그렇게 공격당하면서도 항상 농담을 잃지 않았던 그였기에 최후의 소식은 너무나 믿기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자신 속의 감정과 입장을 떠나 그의 시대와 그가 하고 간 일들에 대해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그것이 남기고 있는 의미들에 대해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그를 진실 이상으로 미화하려 해서도, 그의 반대편에 섰다고 그가 한 일까지 외면하고 폄하하려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는 국민들이 추모의 열기로부터 냉정한 역사적 시각을 되찾아갈 때 제대로 시작될 수 있고, 긴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의 안타까운 서거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 하나를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자리 지키기’라고 생각된다. 그는 권력의 분산과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애썼던 분이다. 그러나 스스로 내려놓은 권력은 이 사회에서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전보다 국가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갈등을 심화시켰다. 그를 막다른 선택으로 몰고 간 주요인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의 헌법에 규정된 권력구조상 대통령이 추구하는 바대로 국정을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과거의 대통령들은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는 비민주적·초헌법적 수단에 의지해 국가경영의 효율성을 기하려 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권력기관들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않고 법에 규정된 본래의 자리로 돌려주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추진된 일은 많았으되 법제화된 일은 적게 되었고, 정국은 시끄러웠으며 자주 흔들렸다. 권력자의 장악에서 벗어난 검찰은 스스로가 절제와 균형을 잃고 정치화하지 않았는지, 독재자의 재갈에서 풀린 언론은 스스로가 정치권력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갈등과 편 가르기를 부추겨 오지 않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 정치보복이 계속되는 것인가? 분권형 권력구조가 답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권력기관과 언론이, 학계와 시민사회가 절제를 익히고 각자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비극의 재연을 막는 길이다. 검찰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 여론보다 실체적 진실에만 의존하는 절제를 지키고, 언론은 스스로 경기장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입장과 목표를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냉정한 관전자와 비평자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민주화된 우리 사회의 건강한 규율과 균형을 세워 주어야 한다. 학자들도 단체와 조직을 만들어 정치세력화하는 것보다 글로써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본분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는 절제와 균형을 벗어난 매도와 기득권의 방어와 확대를 추구하는 소리만 높아져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낮아졌으며 잃은 자가 되었다. 이번 비극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제 각자가 지켜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