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요즘 인플레 대비 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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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30면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난해 9월 이후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요컨대 “미국 경제의 앞날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미국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지난해 10월엔 뉴욕 타임스(NYT)에 쓴 칼럼을 통해 “미국 주식을 사들여라! 나는 지금 매입하고 있는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버핏이 실제로 미국 주식을 마구 사들였을까?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이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명성과 평판이다. 그는 투자의 귀재라는 명성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나중에 투자의 실패로 기록될 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가 미국 경제의 앞날을 믿는다고 말한 뒤 사고판 내용을 보면 그는 자신의 말만큼 낙관적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미국 경제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며 사들여 보유했던 종목을 적잖이 팔아 치웠다.

왜 그랬을까? 그는 미국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잘 안다. 미국인의 소비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고 미 경제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버핏의 친구가 주지사로 있는 캘리포니아가 급증한 재정 지출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파산 일보 직전이다. 이는 돈을 마구 쓰고 있는 미 연방정부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를 대변해 준다. 건강보험 시스템을 바꾸는 바람에 연방정부의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버핏 자신도 미국이 안고 있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바로 고령화다. 국내총생산(GDP)과 견줘 미국에는 나이 든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경제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셈이다.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떠오르는 나라 중국 문제도 있다. 이 나라의 경제적 파워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버핏과 동반자인 찰리 멍거는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중국이 떠오르고 있는 현상에 대해 코멘트했다. 두 사람은 비교우위론을 들먹이지 않았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는 결코 중국인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버핏과 멍거는 “자유로운 미국인이 창의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중국인보다) 생산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분히 비경제적인 논리다.

요즘 버핏을 긴장시키는 건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구멍 속에 든 쥐’로 보고 있다. 언제든지 뛰쳐나와 이곳저곳을 휘젓고 돌아다닐 태세인 쥐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를 그토록 불안하게 보고 있는데 버핏은 왜 미국 주식을 선호하는 것일까? 그는 기본적으로 ‘아는 주식’만 사는 인물이다. 그가 외국 주식을 사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 종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들였을 뿐이라는 얘기다.

투자의 귀재인 버핏은 아주 신중한 사람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 미국인이 거품에 취해 빚을 마구 끌어다 쓰고 있다고 경고했고, 이혼한 여성은 경제적 안전을 위해 국채나 주정부가 발행한 채권에만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그가 요즘 갑자기 태도를 바꿔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식을 사들이라고 권고할 이유가 없다. 그가 낙관주의자라면 장기적인 측면에서 그럴 뿐이다. 그가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는 낙관주의자나 비관주의자의 범주를 뛰어넘어 신중한 투자자일 뿐이다. 그는 요즘 치밀하게 인플레이션을 대비하고 있다.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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