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해다.
유서는 조작된 채 발표됐다.
봉하마을은 도청돼 왔다.
아니다. 그는 스스로 몸을 던졌다.
말기 폐암 환자였다.
절망이 그를 죽였을 것이다.
위 글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인을 둘러싼 항간의 대표적 음모론이다. 사실과는 다른 내용이다.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시해설’이 제기됐다. 경찰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도 ‘유서 조작설’이 나왔다. 정보기관이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도청했다는 ‘도청설’도 인터넷에 떠돌았다. 최근엔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이유가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폐암설’도 퍼졌다. 도청설을 제외하면 정부 당국과 유족이 직접 나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2009년 5월 23일 새벽 -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외출’
음모론은 대중의 허탈하고 절망적인 심정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숭실대 배영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대중적 인기가 있는 인물일수록 음모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마음을 기대고 있던 인물이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 다른 정보를 찾게 되는 심리일 것”이라는 진단도 함께했다.
경찰·검찰 등 정부 기관과 언론에 대한 신뢰가 약하면 음모론은 더욱 강하게 확산된다고 한다. 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가 암살됐을 때도 이스라엘 시민 사이에선 정부가 배후라는 주장이 나왔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초기 발표가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음모론은 더욱 들끓었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 당시 경호원과 함께 있었다는 경찰 발표가 번복된 27일, 시해설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희대 윤성이 사회과학부 교수는 “루머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자들은 정부가 나서서 음모론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루머 확산을 억누른다면 대중에게 “정말 배후에 뭔가 있다”는 의심만 심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음 아고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시해 주장 글은 ‘sizak’이라는 네티즌이 쓴 ‘본인에 의해 삭제된 글? 확인해보겠습니다(10만3800여 건 조회)’다. 누군가가 시해설 관련 글을 삭제한다는 주장에 더 많은 이가 관심을 가졌다. 윤성이 교수는 “틀어막는 것보다는 ‘온라인 토론 문화’를 바꾸는 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토론 교육 강화 ▶수준 높은 토론을 위한 양질의 콘텐트 제공 ▶효율적인 토론을 위한 온라인 구조 개선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특히 ‘중재자(moderator)’를 두고 왜곡 정보를 거르는 영국 방송국 BBC의 토론 게시판 ‘해브 유어 세이(Have Your Say)’의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정영수(정보문화조사부) 대리는 “관점·이념의 차이로 글을 거르진 않지만 사실과 다른 글, 명예훼손 수준의 글을 거르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종결=경남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은 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45m 아래로 뛰어내려 서거한 것으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투신 시간은 오전 6시14분부터 17분 사이이며 오전 6시51분쯤 바위 아래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수사결과 보고서를 유족 측에 보냈으며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었다고 밝혔다.
창원=황선윤 기자, 임미진·이에스더·이정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