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4] 베이징 편: 요절복통 경극 관람기 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의 두 주인공은 하버드 대학 동기이자 할리우드 작가인 밸리와 스티브이다. 어느 날 무료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서로 반대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경주를 벌이는 두 괴짜 모험가의 이야기는 중앙북스에서 6월 초에 출간한다.

북경오리 먹기
베이징에서 하루밖에 머물지 못한다고 할 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북경오리(Peking duck)를 먹는 일이다. 북경오리는 논리적으로는 완벽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공기 펌프를 이용해 죽은 오리의 살과 껍질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 껍질을 삶아 당밀로 문지른 후 한나절 건조시켰다가 굽는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북경오리가 기름지고 맛있다는 것이다.

취엔쥐더 오리구이 레스토랑에서는 다른 요리도 먹을 수 있었다. 메뉴에는 사진이 있어서 ‘통전갈을 곁들인 오리간 튀김 deep?fried duck liver with whole scorpions)’이 어떻게 생겼는지 주문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다. (이 요리는 꼬리를 말아 올린 전갈 떼가, 가운데 놓인 갈색 사각형 모양의 거위간 셋을 공격하려고 둥글게 에워싼 모양이었다.)

나는 층층이 쌓인 기름진 오리고기를 아주 경험이 풍부한 사람처럼 마구 먹었다. 겨자 소스에 찍어 먹는 삶은 오리 물갈퀴가 나오자 나의 잘난 척이 약간 줄어들었다. 잘난 척하려고 이 요리를 주문했는데 막상 오리 몸통에서 떨어져 축 늘어진 오리 발이 접시에 담겨 나온 것을 보니 너무 비극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나는 다리 하나를 먹었다.


일러스트 ⓒ 김은

경극 관람 중에 뱃속에서 살아난 오리발
나는 베이징에서 자유롭게 밤시간을 보낼 여유가 있었다. 나는 경극(京劇)을 관람하고 싶었다.
경극은 징소리와 함께 시작되는데 징소리에 맞춰 전통 현악기들이 집중 포화를 퍼붓듯이 연주를 시작한다. 이 현악기들은 훈련되지 않은 사람의 귀에는 마치 고음의 비명소리가 화음을 이루지 못하고 뒤섞인 듯한 소리를 낸다. 창안(長安)극장에서 값이 싼 좌석 티켓이 대략 50달러나 하는 것으로 볼 때 그런 소리가 훈련된 사람의 귀에는 아마 훨씬 더 좋게 들릴 것이다.

경극은 대체로 사람들이 잘 아는 고대를 배경으로 한 과장된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황제의 첩이 자결하는 이야기, 반란군을 사랑하는 공주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길이가 짧은 작품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황제의 첩이 술을 마시고 취하는 이야기만을 다룬 것도 있다. 내가 경극을 창작하는 워크숍을 진행한다면 학생들에게 공주나 첩, 또는 둘 다를 꼭 포함시키라고 충고하겠다.

관객을 유혹하는 장치 중의 하나는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첩이나 공주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극단들이 여장한 어린 남창(男娼)을 끌어들여 부대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중요한 점은 경극 관람이 이상야릇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이미와 나는 그날 밤 공연하는 <민둥산의 눈물(荒山?)> 티켓을 구입했다.

대개 경극에서는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암시를 준다. 이번엔 문제가 나한테 있었다. 극장에 약간 일찍 도착해서 차를 한 잔 나누는 동안 에이미는 중국 사람들의 데이트 풍속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중국 남성이 외국인 여성을 꼬실 때는 ‘서로 자기 언어를 가르쳐주는(language exchange)’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하는 수법을 쓰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에이미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불만에 찬 오리발이 내 뱃속을 툭툭 건드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나는 최대한 점잖게 에이미에게 양해를 구한 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점심 때 먹은 것을 급히 게워냈다.
3분 동안 계속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한바탕 격렬한 구토의 홍역을 치른 다음에야 겨우 화장실 타일 바닥 쪽으로 비틀거리며 물러날 수 있었다. 속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이제 끝났군. 나를 공격한 게 어떤 중국 기생충인지 몰라도 이제 거의 제거되었겠지. 쇼를 보러 가자!’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5] 베이징 편: 요절복통 경극 관람기 ②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4] 베이징 편: 요절복통 경극 관람기 ①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3] 브라질에서 현지인처럼 여행하는 법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2] 화물선 한진아테네호 타고 태평양 횡단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1] 현대판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시작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