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경제失政]김선홍식 정경유착 캐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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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민정부 경제 실정 (失政) 수사가 한보 특혜대출사건 등 과거 대형사건처럼 정치권 희생자를 낼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25일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정치인은 예외없이 사법처리할 것" 이라는 '원론적' 인 말로 수사범위를 정치권까지 확대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혐의가 드러나면 처벌하겠다는 당연한 발언이지만 이미 기아그룹이나 종금사들로부터 거액의 로비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정치인들의 이름이 정치권에서부터 거론되고 있어 결국 이들 정치인들이 수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에서 사법처리가 거론되는 사람은 기아그룹 계열사인 기산 대표이사 부회장 출신으로 김선홍 (金善弘) 전 기아그룹 회장의 측근인 한나라당 L의원. 이미 검찰수사에서 金전회장이 기산을 통해 비자금을 모은 사실이 드러나 당시 부회장이었던 L의원은 金전회장과 함께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가 확대될 경우 정치권에 나돌고 있는 '김선홍 리스트' 에 거명된 의원들도 불안해진다. 이 리스트에는 일부 구 여권 중진이나 재정통들이 96년 4.11총선전 金전회장으로부터 6억원에서 25억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이미 이 리스트를 확보해놓고 金전회장 등을 사법처리한 뒤 정치권에 대한 금품제공 부분을 집중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 리스트는 현재로선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낸 게 아니라 단순한 설 (說)에 불과하지만 金전회장이 과거 여당 재정위원도 맡았던 점 등 때문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은 대주주가 없는 기아그룹 특성상 정권이 바뀌면 최고경영진이 바뀔 가능성이 컸는데도 金전회장이 5, 6공은 물론 문민정부 때까지도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치권 실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만약 '김선홍 리스트' 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주인도 아닌 金전회장이 주인을 계속하기 위해 엄청난 회사자금을 정치자금으로 빼돌린 '기아판 정경유착' 이 기아 부도의 한 요인이라는 설명도 가능해진다.

이번 수사에서 경제위기의 원인을 설명해야 하는데다 이미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정경유착' 근절을 지시받은 검찰로선 상당히 매력을 느끼는 수사대상인 셈이다.

호남 출신인 金전회장이 과거 정권 때마다 여당과는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으나 현집권 세력들의 야당시절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아 소원한 관계였다는 소문도 검찰이 비교적 자유롭게 金전회장과 정치권 유착관계를 캘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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