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9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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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슴이 북받치는 듯 탁탁 막히는 호흡으로 서러움을 가다듬고 있던 태호의 입에서 쏟아진 첫마디는 충격적이었다. "저는 앵벌이 식구들의 조직원이었어요. " 태호는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원 출신이었다. 그러나 7살되던 해에 고아원을 도망쳐 나와 한 달을 구걸로 배회하던 중에 충무로 일대를 횡행하던 앵벌이 조직에 걸려들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어린 나이에 위장병까지 얻어 나날의 신산을 이겨낼 수 없었던 그로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봉환의 면전에서 하초까지 까발린 일이 있는 그 대머리의 호적에 입적되어 어머니 없는 아버지를 만들었고,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었지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길거리로 나서는 껌팔이가 시작되었다.

낮에는 학교에 나가고 밤에는 껌을 파는, 그로서는 행복했던 앵벌이가 15살까지 계속되었다. 보통 앵벌이들은 그보다 어린 나이때 껌팔이를 마감하게 되지만, 태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구걸의 목소리는 구슬프고 애절하기가 매우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촉발시키는 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15살 이후부턴 놀랍게도 대열을 이탈해서 군것질을 저지르거나 탈출을 시도하려는 어린 앵벌이들의 거동을 감시하는 망꾼이 되었다. 15살의 나이를 먹은 태호를 혹한이 몰아닥치는 길거리로 내버리지 않고 망꾼으로 승격을 시켜 슬하에 거두어준 것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대머리의 은혜였다.

동정심을 유발시킬 수 없는 나이로 자라면 가차없이 길거리로 내쫓고 마는 것이 앵벌이 조직의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대머리가 그토록 태호를 신임해서 알뜰히 거두려 했던 것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대개의 앵벌이들이 한두 번은 경험하게 되는 삥땅의 유혹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따뜻한 방에 몸을 녹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고, 이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그것이 바로 삥땅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었던 멍에였고 명분이었다. 한강에서 월동하는 청둥오리는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면, 머나먼 창공을 날아 다시 시베리아로 날아갈 수 있는 견고한 날개와 지치지 않는 표상을 지닌 철새다.

그러나 그 청둥오리를 부화될 당시부터 땅에다 놓아 기르면, 기어서 달려 가는 행동은 날렵하지만, 죽을 때까지 날지는 않으려 한다. 자신이 드넓은 창공으로 날 수 있는 선천적 기량을 지닌 새라는 것을 스스로 망각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구걸한 돈을 삥땅하지 않기로 한번 버릇들인 앵벌이들은 평생 동안 결심을 지킨다는 것이 그 대머리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간혹 생겨나는 식구들로부터의 탈출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탈출한 앵벌이들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잡혀서 돌아왔고, 탈출의 대가는 혼수상태까지 가는 엄청난 구타를 겪는 것이었다.

태호는 그 결심에서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망꾼으로 승격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수학교까지 졸업시켜 주었다. 18살되던 해부터 그가 담당했던 일은 앵벌이들의 몸을 검색하거나 탈출해서 숨어버린 앵벌이들의 소재를 추적하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서울역 주변과 충무로 일대에 횡행하고 있는 다른 앵벌이 조직원들이나 그들을 비호하는 청부폭력배들과 피가 튀는 패싸움도 겪어야 했다. 그 패싸움에서 칼로 난자당한 흔적이 아직도 태호의 몸에는 선명했다.

그런 아버지를 배반하고 자취를 감추게 된 동기는 2년 전에 있었던 다른 앵벌이 조직원들과의 충돌에서 한달 이상이나 입원을 해야하는 상처를 입은데 연유하고 있었다. 퇴원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그는 때늦은 탈출을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머리의 추적을 예상했던 태호는 강원도로 몸을 숨겼고, 결국은 생계를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난전꾼을 선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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