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의 IMF 건강학]12.적금 깨지말고 생활수준 낮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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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직은 괜찮다.퇴직금도 굴리고 이자도 비싸다.말이 실업이지 이런 행운아도 있다.아니, 월급 한푼 못받고 나온 사람도 중도 해약한 적금.주택 청약금도 있다.숨겨둔 비자금도 조금은 있을테고 그럭저럭 꾸려 나간다.

하긴 직장이 있어도 반 (半) 실업이다.감봉.감원, 아니면 언제 회사가 문을 닫게 될지 초조일색이다.그런데도 생활엔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별일 없네. 잘 사네. " 미국서 온 교포가 한 말이다.고국돕기 운동한다고 나섰던 교포 눈엔 예전과 다름없는 고국 형편에 안도의 숨과 함께, 한편 머쓱한 기분도 드는 모양이었다.어떻게든 때우고 넘기면 괜찮아지겠지. 잠시 위축돼 주춤하더니 우린 다시 들뜨기 시작한다.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그것까지 줄일 순 없잖아. 남들 체면도 있고, 너무 줄여도 아이들 사기에 문제가 있어. 이럴 땐 기분전환도 중요한 거야.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자고!" 아! 이런 배포가 부럽다.

내일은 내일이다.이게 배고파 보지 못한 세대의 낙천성일까. 천진난만해서일까. 순진해서일까. 아니면 아직 의식의 거품이 빠지지 않아서일까. 이런 걱정들이 모두 가난에 찌들어온 세대의 소심증이면 좋으련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더니, '아직은 그래도' 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여기저기 흩어진 재산들로 그럭저럭 3년은 견뎌낼 수 있다는 뜻이다.하지만 우린 여기서 반전의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침몰하는 배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모든 비상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물 새는 구멍이 있으면 막고 배가 다시 옛날 속도로 항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서운 결단을 해야 한다.생활수준을 낮춰야 한다면 낮춰야 한다.물론 이건 쉽지 않다.잘 사는 생활습관을 낮춘다는 건 대단히 불편하고 힘들다.서럽고 억울하다.불만이요, 불행이다.하지만 해야 한다.

그럭저럭 견디며 가라앉길 기다려선 안된다.침몰하기까지 3년이 걸린다면 그 안에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아, 그러나 어쩌랴.

이시형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부장·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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