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한국백경]9.일터를 잃은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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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 전시관에 마련된 채용 박람회장에는 행사기간 동안 하루 3만~4만 명의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구조적인 '대량실업'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케 하는 현장이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하루 1만 명의 실업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 실업자 수는 이미 1백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기계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선반기술자로 일해왔다는 구로동 김씨 (32) 는 12년 동안 몸담고 있던 회사가 4개월 전 부도로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에 실직자가 되어 일자리를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연봉 2천3백만원에, 김씨는 지난 추석 전까지만도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왔다.유치원에 다니는 딸 지현이를 대학까지 보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하루 아침에 인생의 모든 꿈이 깨지다니. " 몇 달을 집에서 쉬다보니 용기와 자신감마저 떨어져 죽을 맛이라는 김씨. 올해 동양대 통신공학과를 졸업했다는 황영화 (22.여) 씨는 채용 박람회장에서 힘없이 구직카드를 쓰고 있다. "나는 일을 해야 해요. 졸업 후 취직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일할 곳이 없다니요." 황씨가 어렵게 대학을 다니면서 오로지 한가지 꿈은 졸업 후 번듯한 직장을 얻어 농사짓는 부모님께 보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그래서 그는 비교적 취업에 기회가 많다는 통신공학과를 선택했고 무선설비기사 1급자격증까지 취득하고 컴퓨터와 외국어도 수준급으로 취업준비에 전념해 왔다는 것이다.

"모두들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요. " 그나마 일자리가 몇 안되다보니 자격이 있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직장을 다니던 사람과 달리 경력도 없고 인맥도 없으니 난감하기만 하다는 것이다.정부는 올해 대졸자 31만7천여 명 가운데 절반 가량인 16만 명이 실업자로 편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만큼 소중한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일이 곧 인생 그 자체니까요. " 대기업 관리직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한 40대 가장의 말이다.

글·사진 김희중〈에드워드 김·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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