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시적으로라도 규제 풀어야 경제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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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말이다. 쉽게 수긍이 가는 세상 만물의 이치이지만 법과 규제는 이를 거스르는 경향이 있다. 처지와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는커녕 뻣뻣하고 강하기만 한 것이 법이고 규제다.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좋은 법이라는 법절대주의(legal absolutism)의 영향이다. 법 앞의 평등 논리에 급급해 자기완결성의 함정에 빠져버리기 쉬운 것이 법이고,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질수록 현실과 동떨어지고 합리성을 잃어가는 것이 규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소비를 진작해야 할 마당에 음식점의 옥외영업을 무조건 단속하고, 손님이 줄어 울상인 음식숙박업· 제과점·목욕장 영업자들을 한곳으로 불러모아 집합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법과 규제의 현실이다. 이런 상식에 어긋난 막무가내 규제가 한둘이 아니다. 규제기준은 획일적이고 집행은 경직적이다. 법과 규제의 이런 병통은 한국처럼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추구하지만 정치적 타협이 힘들고 사회적 신뢰기반이 약한 나라에서 더욱 심하다. 고치는 일이 만들기보다 더 어렵고,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되는 일도 많다.

지난주 발표된 한시적 규제유예 조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고육책이다. 경제가 어려운 동안만이라도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규제를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해, 움츠러든 투자와 소비의 숨통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발표된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도 있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한시적 규제유예는 과거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세계 초유의 실험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전임 카터 정부가 레임덕 기간에 밀어붙인 소나기 입법(‘midnight’ rules)의 시행에 제동을 걸고 규제심사를 강화해 79건의 개선 및 철회를 권고한 예가 있지만 이번 조치와는 의도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번 조치가 환경과 안전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법제도의 안정성과 형평성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접수된 과제가 1000건에 달했지만, 법률개정 사항은 최소화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의 개정만으로 조기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과제 선정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한 규제가 총 280건이다. 이 가운데 42%는 이번 기회에 아예 항구적으로 개선될 예정이다.

이번 조치의 효과와 가치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세계은행 보고서(2004)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도의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하면 연간 경제성장률을 1.4~2.2%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28조4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예산 집행으로 예상되는 추가 성장률이 1.6%라고 하니 규제개혁의 효과를 어림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내하고 합심해야 한다. 특히 이번 조치는 속도전의 성격이 강한 만큼 정부의 후속작업이 한층 시급하다. 국회도 관련 법률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제계는 이번 조치를 선용하되 사회적 책임의식을 더 다져야 한다. 이번의 실험은 앞으로 규제개혁이 가속도를 낼 수 있느냐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최병선 규제개혁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