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 꼬리에 집착하는 당신은 한국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 미묘한 거리는 ‘혀끝’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 사이, 입맛의 거리 감각을 잰 저자는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68). 가끔 일본의 ‘극우 인사’로까지 평가되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지한파’ 언론인이다. 가족을 일본에 두고 무려 30년 넘게 한국에서 ‘홀아비’ 생활을 했다. 그 세월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음식을 사 먹었을 터다. 한국 요리, 특히 ‘음식점 요리’에 대한 ‘감식설(鑑識舌)’로 치자면 웬만한 한국 아저씨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한·일의 음식 문화를 오가는 짤막짤막한 글들로 부담 없이 책을 엮었다.

한·일 양국에서 사랑받는 ‘보양식’인 장어 요리를 보자. 한국 남성의 장어구이에 대한 ‘집착’은 좀 묘한 데가 있다. 장어의 ‘꼬리’ 부분을 높이 친다. “정력에 좋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래서 장어를 먹을 때 꼬리를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일본인은 당황스럽다고 한다. 풍부하고 부드러운 살점이라면 당연히 장어의 등 부위다. 다른 생선이라면 꼬리가 맛있겠는가? 일본에선 높은 사람이나 손위 손님에게 꼬리를 권하면 실례라고 한다. 그렇다고 뭐 일본인이 장어 꼬리를 싫어해 버리는 건 아니다. 일본인의 장어 사랑은 유별나다. 장어 간을 껍질에 싸 구워 먹기도 하고, 내장만 꼬치구이로 팔기도 한다. 장어 머리도 먹는단다.

김밥에 대한 견해를 보자. 일본식 초밥에 나오는 엄지손가락만 한 두께의 ‘노리마키’라고 하는 일본식 ‘김밥’이 있다. 그가 보기에 ‘김밥’은 원래 일본 음식이다. 일본의 이 ‘노리마키’가 한국에 전해져 ‘김밥’이 됐을 거란 주장이다. 하지만 양국의 김밥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 김밥엔 식초가 들어가고, 한국 김밥엔 참기름을 쓴다.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과 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입맛 차 때문일 것 같다고 한다. 한국은 김밥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일본에 비해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김밥을 달걀 노른자로 만 ‘계란말이 김밥’이나 ‘누드 김밥’까지 탄생시킨 ‘한국 김밥’의 화려한 변신에 저자는 압도당한다. ‘김밥 천국’이야말로 이 땅에 있으니.

한국 특유의 ‘통째로’ 먹는 음식에 대한 동경과 향수도 보인다. 그가 1970년대 한국 유학 생활 중 처음 접했다는 ‘통닭’. 말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통 큰’ 스케일에 포만감이 들었다고. 통째로 먹는 찐 옥수수조차 신기했다니. 그가 통째로 닭을 삶는 ‘닭한마리’ 매니어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통 큰’ 음식문화는 한국인 스스로가 잊어 가고 있다. 요즘엔 ‘닭한마리 집’에서도 토막 난 닭고기를 내오는 게 영 마땅치 않다고 한다.

요새 한국 음식은 입맛이나 모양새에서 ‘일본화’가 너무 진행됐다. 이 일본인은 그 일본화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배노필 기자 penbae@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