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105점 선정 '매혹의 민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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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퉁방울만한 눈에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잔뜩 경계심을 나타낸 채 치켜든 꼬리. 하나하나 뜯어보면 용맹스럽고 무시무시한 호랑이지만 우두커니 나무 밑에 앉은 모습은 무섭기는커녕 우스꽝스럽다.고양이를 그려놓고 호랑이라고 우기는게 아닐까 할 정도다.

거기에 대강 그려넣은 나무등걸도 치졸하기 짝이 없다.아무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솜씨다.

그래서인지 이런 까치호랑이 그림은 보는 사람을 푸근하게 한다.격의없이 가깝게 다가오는 친근함을 민화연구자들은 민화의 매력으로 꼽는다.

옛그림을 보는 까다로운 감상법이 대신 비례가 엉망이고 치졸해도 누구나 보고 웃고 즐길 수 있다는 데서 민화를 아무나 따라 부르는 유행가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안휘준 교수 (한국미술사) 는 민화의 처지를 초가집에 견준다.우리 건축사가 덩실한 궁궐과 수백년 된 절집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한국미술사 밖에 있는 민화를 말한 것이다.

그런 민화가 우리 것을 제대로 가꾸고 키우자는 시각에 의해 미술사의 권리회복을 시도하고 있다.호암미술관이 3일 개관한 '꿈과 사랑 - 매혹의 우리 민화' 전이다 (6월30일까지 호암갤러리 02 - 771 - 2381) . 호암미술관 소장 민화 가운데 1백5점을 선정해 우리 조상들이 가진 소탈하고 푸근한 정서와 감성을 다시 보여주는 전시다.

민화전이 그동안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이 전시가 새삼 주목을 끄는 것은 민화의 '다시 보기' 를 통해 미술사 내의 진입여부를 검토하자는데 있다.민화는 말 그대로 미술사 밖의 그림이었다.

수많은 기획전으로 한국미술사를 풍부하게 부풀려 왔던 국립중앙박물관은 한번도 민화전을 개최한 적이 없다.또 한국미술사를 다룬 개설서에도 민화를 언급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민화를 볼 것인가, 민화를 그린 계층은 누구인가와 같은 기초적인 것조차 제대로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호암갤러리 민화전은 새로운 분류법을 들이대 민화의 정의와 폭에 대한 시각교정을 요구하고 있다.

민화에만 있는 책거리나 문자도 (文字圖) 는 별도로 하고 나머지 그림들은 내용에 따라 산수화.화조화.동물화.인물화로 구분했다.예를 들면 '일월오악도 (日月五岳圖)' 를 궁중용 장식병풍으로 분류해 따로 떼어놓고 보던 것과는 분명 다른 방식이다.

호암미술관 김재열 부관장은 "이렇게 늘어놓으니 이제까지 민화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확연하게 보이게 됐다" 고 말한다.예를 들어 화조화 부분을 보면 진채 (眞彩) 로 곱고 정교하게 새와 꽃을 그린 그림이 점차 투박한 선과 야단스런 색으로 치장돼가는 과정이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민화의 탄생과 변천과정이 민화의 정 반대편에 있는 정통회화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 새로운 분류방식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안휘준 교수도 "민화와 정통 회화의 비교를 통해 민화양식의 편년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수확" 이라고 이번 전시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일반관람객의 민화이해를 돕기 위해 매일 (월요일 제외) 오전11시와 오후2시.4시에 담당 큐레이터들이 전시 작품을 설명해주고 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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