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의 IMF건강학]8.가진 사람 분풀이식 매도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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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요즘 우리는 호화 사치족을 규탄, 매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외제차에 최고급 양주, 초호화 가구…. 돈을 물쓰듯 뿌리고 다니는 낭비족, 이들 때문에 나라가 거덜났다고 아우성이다.언론도.TV카메라도 이들의 흥청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치 반민족 매국노처럼 규탄하고 있다.외채가 늘어난 것도 이들 탓이요, 경제가 이 꼴이 된 것도 이들의 과소비 탓이다.이렇게 규탄하고 보니 속이야 시원하다.분풀이라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여기서 냉정해야 한다.하긴 이들의 작태가 못마땅한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그렇다고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우리가 한 짓들을 생각하노라면 돌을 집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세상사람 모두 쓰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다.지나친 소비위축은 시장경제가 돌아가지 않게 한다.쓰는 사람이 있어야 일자리도 생기고 따라서 공장이 다시 돌아갈 게 아닌가.

서민 수준에서 보면 분명 호화사치다.하지만 있는 사람과는 생활감각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그리고 어떤 사회든 부자가 있게 마련이다.그래서 부자문화도 생긴다.

고급 외제도 들여와야 우리에게도 고급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안목이 길러진다.언제까지 싸구려나 만들어 장사할 셈인가?우리 조상은 좋은 음식은 반드시 남겨 아랫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했다.그건 미덕이기도 하고 교육이기도 했다.

좋은 맛을 봐야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딸은 좀 사치스럽게 키울 필요도 있다는 뜻도 그래서다.내가 못산다고 된장찌개나 먹다간 그 딸이 좋은 데로 시집간들 본 게 있어야 상을 차릴 게 아닌가.

우리는 형편이 어려우면 그만 잠재적인 평등주의 심리가 발동한다.더 나아가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나라고 왜 못살아. 이런 기분은 사회정의상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건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이런 사회주의.전체주의는 자본주의에 완패하지 않았는가.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사람들 작태가 꼴사납기도 하고 비판받아야 할 점도 물론 많다.그들의 절제가 아쉽다.하지만 매도는 말자. 좀더 큰 눈으로 보자.

이시형〈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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