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특허 '속빈 강정'…건수많으나 신기술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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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국 시장에서 인기 높은 도요타사 (社) 의 렉서스. 그러나 이 차에는 놀랍게도 신기술이 없다.

도요타사 특허부장 가네로는 "기존의 다른 차들을 만들면서 개발된 좋은 기술을 한데 모은 것이 렉서스의 성공비결" 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은 렉서스의 도요타에 어림 없지만 기술개발 실적만큼은 대단 (?

) 한 것이 국내 자동차업계.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현대.대우.기아 등 3사의 지난해 특허출원은 약 1만건. 이들이 이미 특허 등록.보유중인 것도 1만건 안팎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는 특허는 극소수. 액수 또한 연간 수백억원대 이하로 미미하기 짝이 없다.

전자회사들도 마찬가지. 삼성.대우.LG.현대전자 등이 지난해 출원한 특허수는 3만건. 보유중인 특허만도 1만건이 넘는다.

이 역시 들쭉날쭉하지만 연간 수입이 수십억원선에도 못미친다는 것. 같은 가전사인 일본의 히타치가 연간 1백50억엔 (한화 1천5백82억6천만원) 안팎, 소니가 1백억엔 (한화 1천55억원)가량의 기술료 수입을 올리는데 비하면 '새발의 피' 다.

가전업계에 정통한 한 변리사는 "한때 VCR 한대 만들어 얻은 순수익의 10~20배를 미국.일본 기업에 기술료로 바쳐야 했을만큼 특허수지 역조가 심각하다" 고 꼬집었다.

가전 4사와 자동차 3사는 지난해 약 4만건의 특허출원을 할 정도로 국내 특허출원.등록시장의 '빅7' .따라서 이들의 기술빈약은 국내 기술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헛배 부른 개구리' 인 특허시장에 최근 이들 업계를 중심으로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 삼성전자는 올들어 등록 5년이 넘은 특허를 중심으로 권리유지 여부를 본격 재심사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한 특허관계자는 "심사물량중 대략 25% 가량이 탈락될 것 같다" 고 말했다.

10년 된 특허의 경우 매년 유지료만 건당 30만원 가량이 들 정도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 대우자동차도 지난해부터 자체 심사작업에 착수, 출원중인 것까지 포함해 '영양가' 가 없을 경우 걸러내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특허담당 李모 부장도 "출원 자제는 물론 기존 특허도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면 걸러낼 방침" 이라고 밝혔다.

이들 '빅7' 이 출원경쟁에 뛰어든 것은 90년대초부터. 출원으로 '침부터 발라놓고 보자' 는 의식에다 특허청까지 다출원을 부추기는 바람에 기술수준과는 상관없이 외형경쟁에 휩싸였던 것. 이는 극심한 심사적체를 가져와 시간을 다투는 좋은 기술들마저 손을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대한변리사회 신관호 (申寬浩) 회장은 "최근 업계가 앞서 특허 체질개선에 나서는 만큼 관계기관들도 분위기조성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고 말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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