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업(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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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모든 자살 소식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특히 안타깝게 하는 죽음이 있었다.

교사생활 33년에 정년퇴직을 2년 앞둔 63세의 노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7세 때 같은 마을 친구와 함께 닭 한마리와 토끼 세마리를 서리하다 들켰고, 그로 인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줄곧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해 왔는데, 당시 법에 규정한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용되었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면직을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자살부른 36년전 닭서리 젊었을 때 잘못 임신케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병원에 넘겨준 일이 있는 이들이 특별히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보도도 있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미혼모의 아이들을 앵벌이 조직에 팔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내 아이가 갓난아기 때는 등에 업혀서 구걸의 구실로, 조금 자라서는 껌팔이로, 더 자라서는 더욱 나쁜 일을 하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로 촬영하면 우리의 모든 움직임과 음성이 테이프에 담겨진다.

물론 촬영하지 않으면 동영상이나 소리를 보거나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보이고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동작과 말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어디엔가 남아 있다.

우리의 생각은 어떨까. 마음을 촬영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어디엔가 남아 있다.

불교에서는 몸.입.생각의 움직임을 업이라고 부르고, 모든 업은 축적된다고 가르친다.

절집에는 천도재라는 것이 있다.

집안의 모든 망인을 위해 재를 올리는 의식이다.

이 재를 올릴 때 재자는 낙태나 유산으로 태아의 상태에서 죽은 영가도 위패에 올린다.

천도재를 올리면서 죽은 태아를 상기할 정도라면 자신이 과거에 철없이 범한 기아 (棄兒) 나 살생의 업을 모두 생각하게 된다.

심층의식에 축적되어 있는 자신의 악업을 표면의식으로 떠올려 참회하는 것이다.

내가 지은 업을 나 자신이 생각해 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남이 지적해 주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은 과거에 지은 색의 업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고, 퇴임한 우리의 대통령은 자식의 업 때문에 낭패를 보았다.

또 새 정부에 의해 발탁된 장관 가운데는 재물의 업으로 곤욕을 치른 이도 있었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숨기는 이의 업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관대하다.

그러나 남 앞에 얼굴을 내미는 사람의 업에 대해서는 사정을 두지 않고 다그친다.

선악의 업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과보를 낳는다.

자기의 업은 버리거나 숨길 수 없다.

남이나 자신이 안다.

자신의 표면의식이 모르는 체하더라도 심층의식이 꼭 간직하고 있다.

나쁜 果報도 선용해야 그런데 "선은 좋은 과보를 낳고, 악은 나쁜 과보를 낳는다" 고 해서 선업의 과보가 반드시 좋기만 하고 악업의 과보가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업의 원인에 관계없이 나쁜 과보도 좋게 활용할 수가 있다.

가령 부자와 빈자가 있다고 치자. 부잣집이 좋은 과보를 누리고 있지만 재물을 잘못 쓰면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반대로 가난한 집이 빈궁의 과보를 받았지만 성실한 자세로 살면 남모르는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도 있다.

마약에 빠져 인생을 어둡게 살아온 박지만 (朴志晩) 을 보자. 마약에 처음 손을 댔을 때 일반인처럼 엄하게 감호했더라면 그는 지금쯤 밝은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주변의 섣부른 동정과 과보호가 그를 지금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았던가.

저 노교사는 죽지 않았어야 한다.

37년 전의 사소한 악업에 대한 과보가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살면서 좋게 삭였어야 한다.

그래야 저 앵벌이들의 친부모, 즉 색심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도 살아 있으면서 악업의 나쁜 과보를 선업을 짓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석지명<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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