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매각 잇단 노사갈등…고용승계·보상금지급 시비 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인수.합병 (M&A) 이 늘면서 근로자측의 고용보장.보상금 지급 요구가 거세져 노사간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인력승계를 보장해달라' 는 요구가 강해 앞으로 본격화할 국내기업 M&A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거평그룹의 경우 계열사인 대한중석 노조원 4백여명이 회사가 외국에 넘어간 이후의 고용보장과 보상금 4백60억원 지급을 요구하며 2일 전면파업에 들어간 데 이어 3일에는 서울논현동 거평사옥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거평은 대한중석의 초경합금사업부문을 이스라엘 이스카사에 팔기로 가계약한 상태. 거평 관계자는 "노조가 고용.노조.단체협약 승계 이외의 요구는 하지 않기로 해놓고 약속을 어겼다" 면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동해㈜도 지난달 일본 오므론사에 전장사업부를 팔기로 가계약했으나 고용승계를 둘러싼 노사갈등이 계속되는 바람에 정식계약에 애를 먹고 있다.

회사측은 고용승계를 약속하는 대신 향후 1년간 노조활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나 노조는 이에 반발, 지난달 30일부터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 부천에 있는 비료업체 경기화학공업은 대부분 사업부문을 별도법인으로 분리, 캐나다.대만 업체에 팔 예정이었으나 노조측이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항의농성을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어 진통을 겪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중공업.만도기계 등도 사업부문을 외국사에 팔겠다고 발표한 이후 고용보장과 보상금지급 문제를 놓고 노조와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외국기업에 인수되면 인력이 대폭 정리될 가능성이 있어 이런 사전조치가 불가피하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업을 파는 상황에서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면서 연내 국제입찰이 예정된 제일.서울은행을 비롯한 기업 매각때 이 문제가 M&A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안건회계법인 이재술상무는 "외국 자본가들은 한국기업을 인수할 경우 과연 종업원을 합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게 사실" 이라면서 "이 부분이 외국자본 유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고윤희·유권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