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세돌 징계당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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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바둑의 일인자 이세돌 9단이 ‘징계’의 위기에 처했다. 한국기원 프로기사들은 26일 열린 임시 기사총회에서 ‘이세돌 9단에 대한 징계안’을 찬반 비밀투표에 부쳐 찬성 86, 반대 37, 기권 2표로 통과시켰다.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은 실질적인 징계 여부는 이사회(이사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가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사회는 기사회의 의견을 존중해온 전례가 있고 상당수 이사들이 이미 이세돌 문제에 대해 강경 기류를 드러내 온 터여서 사태는 이미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든 느낌이다.

한국기원이 지적하는 이세돌 9단의 문제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①프로기전 등 자신이 주인공인 주요 시상식이나 개막식에 불참한 점 ②중국 진출 기사들은 상금의 5%를 기사회에 내기로 돼 있는데 이 9단이 이를 내지 않은 점 ③외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기보저작권 문제를 한국기원에 위임하는 것에 대해 프로기사 238명 중 이 9단만 유일하게 사인하지 않고 있는 점 ④2009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한 점.

그동안 이세돌과 한국기원 사이에 내부적으로 갈등이 증폭돼 오던 중 최근의 한국리그 불참 선언으로 끝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이세돌 9단에게도 이유는 있다. 지난해 이 9단은 한국기원이 일정 조절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밤 비행기로 중국에 가서 대국하고 아침 비행기로 돌아와 대국하는 등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이 판국에 5%를 떼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리그가 중국리그와 달리 한 팀 6명의 선수가 거의 동일한 대접을 받는다는 점도 오래전부터 불만을 표시해온 사안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기사총회는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이 주도했다는 소식이다. 평소 기사회에서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조 9단이 “일인자는 일인자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바둑계가 위기 상황인데 상금만 가져가고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는 등 의무는 다하지 않는다면 어떤 스폰서가 대회를 후원하고 싶겠느냐”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도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이세돌 팬들이 ‘기사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것은 자유’라 말하면 반대편에선 ‘조직의 규정과 관습을 따라야 옳다’고 말한다.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은 규정이 미비해서 일어난 일이란 지적에 대해 한국기원 내규 중 다음 네 가지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기사는 한국기원 주최, 주관의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사는 한국기원의 체면을 손상하는 행위, 사업목적에 저해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해외 진출 기사는 한국기원 주최, 주관의 국내외 프로 기전에 우선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사의 해외 진출 시 한국기원의 위상을 손상하는 행위 및 사업 목적에 저해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사항은 징계 규정이 없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징계가 가능하다. 이날 총회에선 중국 진출 기사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정도 통과시켰다. 1)중국 진출 계약은 한국기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스케줄 편의를 제공하되 상금의 10%를 공제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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