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의 IMF건강학]7.사소한 곳에서 '작은행복'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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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가장이 직장에 잘 다닐 때는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 줄 미처 모른다.어쩌다 늦은 귀가에 하숙생이니 하고 몰아세우기만 했다.

꼬박꼬박 월급봉투를 갖다 바쳐도 '삥땅' 이나 안했는지 눈을 흘겼다.적다고 바가지나 안 긁었으면 다행이다.벌이가 시원찮아도 아침이면 출근길에 오르는 남편의 뒷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줄도 그땐 몰랐다.

이제사 생각하니 그게 행복인 줄도 차마 몰랐다.이게 인간이 빠지기 쉬운 당연심리의 함정이다.있는 건 당연하고 없으면 즉각 불만이요, 불평이다.이렇게 당연심리는 인간을 한없이 가난하고 치사하게 만든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간 데 없고 언제나 없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찼으니 얼마나 그 인생이 불쌍하냐. 이게 잘 사는 나라.잘 사는 집의 고민이요, 불행이다.

당연심리의 치료는 딱 한가지, 없어봐야 안다.부도 위기에도 나라가 버텨주는 것만으로 고맙다.시원찮은 벌이에도 아침이면 툭 털고 집을 나서는 남편이 고맙다.월급은 적어도 우리 회사가 잘 견뎌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으냐. 실직했는데도 건강한 것만으로 고맙다.

아니, 저렇게 버티고 앉은 것만으로 진정 고맙다.생각하면 그저 모든 게 고마울 뿐이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본 감동적인 수업 장면이다.흑판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 이라고 쓰여 있고 아이들은 저마다 내게 소중한 것을 집에서 가져왔다.낡은 방석.고장난 장난감.누더기… 등이 책상마다 놓여 있고 아이들은 차례로 일어나 왜 그것이 가장 소중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남이 보기엔 하찮은 것이지만 거기엔 온갖 사연들로 얽힌 소중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설명을 듣고보니 그 하찮은 것이 세상에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임을 깨닫게 된다.

감사할 일을 찾아보자. 으레 있는 거려니 하는 당연심리에서 벗어나 하나하나 자세히 보자. 얼마나 감사할 일이 내 주위에 많은지 자신도 놀랄 것이다.소중한 보물들을 가까이 두고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린 모든 게 모자라고 불안하다.이 부족의 시대를 넉넉하게 사는 비결은 오직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이시형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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