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TV 투캅스' 부작용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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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연예인만큼이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경찰관이다.각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범죄를 드라마화한 재연 프로들을 방영하는데다 뉴스에까지 상황 재연이 잦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어리숙한 몸짓으로 방송사 지시에 따라 연기에 몰두하는 형사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짓곤 한다.심지어 방송사엔 "경찰관에게 연기지도를 하라" 는 시청자 의견까지 접수된다.

한데 화면 밖 얘기를 꺼내면 웃음이 가신다.

지난달 21일 경북 영주에선 14세 소년이 재연 프로를 보고 모방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일어났다.

수사관들은 이 아이의 치밀한 강도 행각에 할 말을 잃었다.2일엔 서울YMCA와 한국성폭력 상담소가 성폭력 범죄를 재연한 TV프로 제작진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강간 사건을 보여주며 샤워하는 여인의 허벅지까지 드러낸 선정성에 대한 항의였다.

이같은 모방범죄 위험과 폭력.선정성 소재의 재연 프로가 많은 것에 대해 일선 PD들은 시청률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일반 드라마에서 다뤘다간 방송위원회 징계가 떨어질 도끼 살인, 성폭행 스토리를 '범죄 예방' 이란 명분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 시청률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소리다.더욱이 IMF 한파로 광고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라 광고수입과 직결되는 시청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방송사의 현실이다.

정작 답답한 건 경찰측의 태도다.

지난달 21일 발생한 모방범죄에 대해 한 수사관은 "상부에 정식으로 보고했다" 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엄격한 소재 심사를 거쳐 출연이나 협조를 허용하고 있다" 는 말 뿐이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의 생각은 다르다.

재연 프로에 출연했던 한 형사는 "수사기법이 노출되는 게 걱정스러웠다" 고 고백했고 한 고위 간부는 "모방범죄의 위험이 크다" 는 견해를 밝혔다.

경찰이 직접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다.

서울YMCA 이승정 부장은 "각종 범죄가 늘어 시민들의 불안이 이만저만 아닌데 경찰이 그럴 여유가 있느냐" 고 질책한다.이에 대해 경찰청측은 "경찰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것" 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한가지 관계당국에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국민이 경찰에 바라는 것은 영화 '투캅스' 의 박중훈이나 '다이 하드' 의 브루스 윌리스 같은 멋진 액션 연기가 아니다.

이미 해결한 범죄 홍보에 열을 올리기보단 날뛰는 범죄로 인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다.

강주안<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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