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주에 제동…독·러·프랑스서 다극체제로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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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의 독주에 서서히 제동이 걸리고 있다.

걸핏하면 대외 경제제재를 '전가 (傳家) 의 보도 (寶刀)' 로 사용하며 '팍스 아메리카나' 를 지향하는 미 행정부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들이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중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화해의 가르침' 을 훈수했다.

쿠바.리비아 등에 대해 미국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 ' (긴장해소의) 최선의 방안은 적 (敵) 들과 평화를 협의하는 것' 이란 취지로 충고를 했다.

미국 독주에 제동을 걸고 있는 사람은 만델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헬무트 콜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강대국 지도자들이 '협공' 으로 미국을 옥죄고 있다.

이들 3개국 수반들은 지난 26일 모스크바에 모였다.

회합의 목적은 외형상 친선도모지만 세계를 다극화한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미.소 양극 냉전체제 붕괴후 미국 일극체제 일변도로 나가던 국제정세를 다극화시킴으로써 미국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옐친도 회동이 끝난 뒤 "이번 3국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다극화 세계구축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고 언급, 이같은 의도를 분명히 했다.

시라크 역시 "내년 5월 프랑스에서 3국 정상들이 다시 모일 것" 이라고 부연, 미국 독주에 대해 지속적으로 견제할 것임을 시사했다.

올해초 미국이 이라크 공습 위협을 가했을 때만 하더라도 중국.러시아.프랑스 등이 극력 반발, 불발됐으며 쿠바 제재를 강화하기 위한 '헬름스 - 버튼 법안' 도 시행이 거듭 연기되더니 각국들의 압력으로 인해 오히려 제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세계 각국의 견제를 받는데는 미국 스스로 자충수를 둔 면이 없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테러.인권탄압.마약밀매 등을 이유로 한 대외제재 남발이다.

클린턴이 집권한 93년부터 96년까지 1기 행정부동안만 해도 35개국에 걸쳐 60차례나 된다.

이는 2차대전후 40년동안 이뤄진 제재 수와 비슷할 정도니 클린턴이 얼마나 대외제재의 '칼' 을 휘둘러왔는지 짐작할만 하다.

때문에 미 국내 업계는 "무역제재는 자해의 부메랑" 이라고 자국 정부를 비난해왔고 유력 언론들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독단적 태도를 비판해왔다.

미 의회는 지난해 행정부가 특정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경제제재를 국제정치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규제토록 하는 입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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