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 경제 영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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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부는 24일 국가 재정전략회의를 열 예정이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모여 나라와 각 부처 살림살이의 큰 방향을 잡는 중요한 회의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회의가 취소됐다. 경제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대신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들은 주말에 비상근무를 하면서 국내외 경제 상황을 점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차분함을 되찾는 분위기다. 정부는 당장 우려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재정전략회의를 26일 국무회의 후에 다시 열기로 일정을 잡았다. 과거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의 굵직한 정치 현안이 경제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장 신경쓰이는 대목은 환율과 신용등급이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는 23일부터 국제금융센터에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고 해외 투자은행(IB)과 신용평가회사·외신의 동향을 살폈다. 재정부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은 “시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이어서 광범위한 접촉은 못했지만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게 해외 IB들의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정치권과 사회의 갈등이 분출되며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경우엔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는 정책은 논의도 못 해보고 묻혀버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에도 한동안 그랬다.

특히 이제 막 시동이 걸린 구조조정이 표류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의 한 임원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이미 정치적 논리나 입김이 개입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순수히 경영 지표만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더라도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은 채권단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발하고 있어 재무개선약정의 체결이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단이 강제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할 경우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상황에 휘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안종범 교수는 “지금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효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이 시기에 정부 정책이 불신을 당하면 위기 탈출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입법이 시급한 정책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6월 국회에도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비정규직법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표류할 경우 7월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상당수 해고될 것으로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을 국회가 다루길 꺼리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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