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트럭 배기가스 기준 강화, 환경부 '오락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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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기오염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인데도 국민건강은 외면하는가."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전북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 두달 정도 유예한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대형 상용차에 대해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를 계속 적용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업계와 환경단체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환경부는 당초 업계 의견을 반영해 유예조치를 해주려 했으나 국회의원들이 환경단체의 의견에 가세하자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환경부는 7월 1일부터 경유를 사용하는 3.5t 이상의 버스.트럭 등의 배출가스 기준을 도입했으나 업계의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이를 두달간 유예해주기로 한 상태다.

배출가스 기준의 강화는 이미 2000년 8월 예고된 것이고 이에 따라 상용차 메이커들은 엔진 개발을 추진해 왔다. 문제는 현대자동차와 다임러크라이슬러사의 합작계약이 지난 5월 무산돼 현대 측의 자체개발이 늦어지면서 불거졌다. 현대차는 시행 열흘을 앞둔 지난달 19일 환경부에 기준유예를 요청했고, 전북도와 자동차공업협회도 환경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들은 현대 측이 기술개발을 완료하는 오는 8월 말까지 두달 동안 기존 차량의 생산(전주공장)이 중단될 경우 매출 손실이 3000억원, 부품업체 납품물량 차질이 2000억원 등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현대는 지난해 3.5t 이상의 상용차 9종 3만5823대를 국내에 판매했는데, 이 가운데 6종이 강화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반면 6848대를 판매한 대우상용차.대우버스는 모두 새 기준을 맞췄다. 이에 따라 지난 1일 경제부처 장관 간담회에서 산업자원부 등의 요청에 따라 환경부도 기준 적용을 유예키로 하고 이를 위해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키로 약속했다.

환경정의.녹색교통운동 등 환경단체들은 즉시 반발했고, 이에 대해 곽결호 환경부 장관은 지난 5일 "유예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여전히 반대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5일 유예조치를 담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단 사흘 만인 7일 의견접수를 마감했다.

그러다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의 철회 요구와 9일 환경단체의 항의방문이 이어지자 환경부는 또다시 방향을 틀었다. 개정작업을 일단 보류하고 환경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12일 '경유 상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연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논란은 현대가 불씨를 제공했지만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환경부의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녹색교통운동 민만기 사무처장은 환경부에 대해 "21일간의 입법예고와 별도의 공청회 등 제대로 절차를 밟아라"고 주장했다. 14일간의 공청회 예고 기간까지 포함, 정부가 생각하는 두달을 다 채우도록 해 시행규칙 개정을 못 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환경부는 이날도 "토론회를 지켜본 뒤 내부적으로 최종 방침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금은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이 적용돼 현대차는 이에 미달한 상용차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 5t 이상의 트럭은 전 차종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며 "8월 말까지만 규제를 유예해 주면 기준을 맞출 수 있으며 앞으론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 이상으로 배출가스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강찬수.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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