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매니아 사로잡는 MBC '일요예술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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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건모가 아주 흥이 났다.

그로서는 처음으로 가곡 ( '님이 오시는지' ) 을 불렀다.

또 마이크 대신 신디사이저를 잡고 '모 베터 블루스' 를 연주했다.

이어서 기타를 꺼내 '봄이 오면 강산에 꽃이 피고' 를 톡 터지는 사이다맛으로 열창했다.

끝으로 키보드 건반을 두들기며 '저스트 투 오브 어스' 를 뽑았다.

흥에 겨워 바닥에 눕는 해프닝까지 연출한 그의 주변에는 피아니스트 김광민을 비롯한 실력파 세션들의 재즈풍 연주가 연신 싸고돌았다.

이쯤되면 음악 좀 듣는 사람은 무슨 무대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지난 8일 늦은 밤 MBC에서 방송된 '일요예술무대' - 김건모 스페셜' 편은 김건모를 단순한 팝가수에서 탁월한 명창, 세련된 건반연주자, 흑인음악의 달인으로 확실하게 변신시켰다.

이어서 15일 방송된 '98 꿈의 작업 - 조동진 사단' 편도 마찬가지였다.

조동진.장필순.조동익밴드.낯선 사람들.한동준과 권혁진의 듀오 '엉클' 등 좀처럼 TV에서 볼 수 없던 통기타 가수군단이 한데모여 자연스러우면서 무게있는 선율을 들려주었다 요즘 '일요예술무대' 는 제대로 된 TV쇼프로가 뭔지 화끈하게 보여준다.

주로 캠퍼스에서 열리는 '일요…' 공개녹화장은 무대의 가수와 객석의 청중, 안방의 시청자 모두가 만족하는 분위기로 흥이 넘친다.

원래 팬이었다는 김건모는 출연전 일주일을 이 프로 레퍼토리 연습에 바쳤고 3주전 나왔던 임재범은 "앞으로 이 프로만 출연하겠다" 고 선언했다.

시청자 역시 PC통신에서 "무슨 콘서트라도 갔다 온 기분" 이라고 소감을 전한다.

그런 만족감은 우선 다른 쇼프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소리 뭉치때문. 이 프로는 카메라 리허설은 하지 않아도 오디오 리허설만큼은 최소한 5시간씩 공을 들인다. 가수의 노래와 피아노.색소폰.기타등 각 파트의 소리를 균등하게 잡아 정교한 소리뭉치를 짜는 이른바 피킹 (Picking) 작업을 위해서다.

올초부터는 피킹 담당에 방송사 소속원만 쓰지않고 출연자들이 원하는 외부 엔지니어도 서슴없이 쓰기 때문에 소리 질이 더 좋아졌다.

솜씨있는 음반 엔지니어인 이훈석씨같은 사람이 그 예다.

또 투명한 블루톤으로 재즈 분위기를 낸 조명도 출연자를 달라보이게 만드는 요인. 이런 소리.조명아래 출연하는 가수들이 다른 TV쇼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야성적인' 쇼맨쉽과 감춰온 장기를 선보이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5차례나 출연한 리아는 다이안 쇼어가 즐겨부른 명재즈넘버 '레버런 리' 같은 곡들을 능숙하게 불러 목청좋은 로커에서 그럴듯한 재즈가수로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선악후어 (先樂後語)' - 말을 아끼고 음악을 우선하는 진행원칙도 싸구려 개그가 압도적인 다른 쇼들과 차별화되는 주요인. 프로의 얼굴 김광민.이현우 더블MC는 어눌한 말투에다 개그도 썰렁하지만 (그래서 좋아한다는 팬들도 많다) 높은 음악 지식에 바탕한 품격있는 진행으로 인기를 모으고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출연자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말이 늘고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프로의 시청률은 4~5%선. 1주일중 가장 시청률이 낮은 일요일 심야 (정확히는 월 새벽12시25분)에 방송되고있는 탓에 높지 않다.

그러나 50만명으로 추산되는 20~30대 음악 매니어들이 몇년째 부동의 시청층이 되주고있어 문화방송 (MBC) 의 '문화적' 이미지를 높여주는 대표적 프로로 인정받고있다.

제작진은 "다음날 출근때문에 시청에 어려움이 많다는 원성이 많아 곤혹스럽다" 며 4월 개편에서 30분쯤 일찍 편성되면 시청률이 훨씬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강찬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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